읽고 싶은 수필

금강산과 예술정신 / 최은정

윤소천 2016. 3. 5. 05:32

 

 

 

 

 

천선대에 오르니, 환청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편제의

장쾌한 성음이 등등한 기세로 웅장하게 귓전을 때린다. 내지르는

상성이 맑은 공기 속에 귀곡성 같다. 기상이 넘쳐흐른다.

나는 지금 신의 정원에 온 것이다. - 하면서 넋을 놓았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은 숲이 우거진 골짜기와 화강암

절벽들이 조화를 이룬 일만 이천 봉의 절경이다.

 

금강산은 화엄경에서 따온 이름이다. 화려하고 장엄한 산의

모습이 화엄의 세계와 같다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만물상 찾아가는 길엔 사연도 많다.

네 신선이 놀러왔다가 눌러 앉았다는 삼선암, 자리를 못 잡아

건너편에 서 있는 독선암. 귀신의 얼굴 같은 만물사의 수호신

귀면암, 만 가지 물상들을 보는 것 같다는 만물상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보이기에 금강산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나 보다.

 

무리 지어 친밀하고, 경쾌하며, 날 것 같고, 민첩하고 둔하고,

자연 이치마저 초월한 기기묘묘한 형상에, 서릿발 같은 암산이 조화를

이루고 암반 따라 흐르는 물길의 비경에서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태동했다고 한다. () () () ()의 정신. 바위같이 딱딱하고,

돌처럼 단단하여 경계가 분명하고 바른 진경산수화는 금강산에서

창조되었으며 그 기상이 바로 우리 민족성과 닮았다고 한다. 대륙 화풍이나

사대주의에 물들지 않고 우리 땅을 그린 겸재 정선, 금강산이 없었다면

그의 진경산수화도 태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단 50년 만에 금강산 길이 열려 북녘 땅에 발을 내딛으니

새삼스럽게 슬픔이 인다. 구룡폭포에 오를 때, 동행하지 못한 식구들이

안타까워 옥류동에서 물을 떠 왔다. 집에 돌아와 그 물을 마셨더니

어느새 나는 상팔담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었다. 팔선녀가 목욕했다는

상팔담 물이 어찌하여 그렇게 금강의 침묵을 깨고 우렁차게 쏟아 내릴까.

비로와 구정이 함께 합수하여 상팔담에서 부터 나도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다. 구룡폭포에서 비봉폭포를 바라보며 세존봉, 관음봉을

끼고 연주담에서 돌다 옥류동으로 흐른다. 너른바위 맑은 공기

옥녀봉 절벽을 올려다보고 천천히, 그러다가 다급히 오르던

길을 따라 다시 흐른다.

      

금강산은 침묵의 미소가 있다. 사바와 극락세계를 이어주는

인간의 마음이 있어서 일까. 상팔담에 전하는 지상과 천상의 남녀를

화합시킨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 그리고 오누이의 애절한

이별을 담은 금강초롱, 수도자를 세속인으로 끌어내린 보덕암과

묘길상의 이야기, 옥류동의 백도라지 전설, 신계사의 연어

이야기는 금강산을 대표하는 이야기들이다.

 

구룡폭포는 은하가 쏟아지는 것 같다. 속세의 인간에게

하늘의 소리를 전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백의민족의 정기를 쏟아

붓는 것 같기도 하다. 고운 최치원은 천길 흰 비단을 드리운

하고 만 섬의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하다는 시를 폭포 앞 너럭바위에

새겼다. 구룡연()에 몇 세월을 두고 물이 떨어졌길래 그토록

깊은 바위구멍을 낼 수 있었을까. 연이런가, 하늘이런가,

물과 하늘이 청으로 만난다.

      

조선의 화가 최북은 옥류동 계곡의 넓은 바위 위에

화선지를 깔고 선경에 빠지곤 했다 한다. 그는 죽음으로써 금강에

안기고 싶다고 했다는데, 그의 마음을 헤아릴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추사의 정신적 스승도 금강산이 아니었을까. 추사의 글씨

앞에서 만물상의 기상을 보았다. 거침없는 획,솟구치는 생동감,

옹골찬 골격, 파격의 조화, 추사체는 치장하지 않고, 시류의 속기를

걸러 낸 글씨다. 거기에 절대고독의 시련을 글씨로 극복하여

서체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바위를 뚫을 듯한 금석체.

 

 추사의 글씨와 금강산이 인간 세상으로부터 탈속한 경지가

같은 것 같았다. 이런 금강산을 신선이나 가는 줄 알았는데 나도

여기에 와 있다. 돌아오는 길에 속세의 때를 벗고, 신선이 되지

않았나 할 정도였는데, 만장천 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철없는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금강산을 오르면서 어느 구석에서

 금강초록이 나를 반겨줄까 하며 두리번거렸는데, 엄나무만 불쑥

보였다. 소나무 숲엔 맑은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 길을 걸어서

가지 못하고 매연을 뿌리면서 버스에 실려 가고 있다. 팔천여

미인송들은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목을 빼 바라보는

듯했고 흐르는 물길은 따라오는가 하면 이내 숨어버렸다.

 

중국 화가 고개지도 원화동천의 바위에 천하제일의

명산이라 썼고, ‘천 개의 바위가 빼어남을 경쟁하고 만 갈래

골짜기는 물 흐름을 다툰다고 화제에 썼다. 소동파는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탄식을 했다 한다.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여섯 날 중 마지막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데 보내셨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금강산에선 공기만 마셔도 배부르고, 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저만치 가 있었다. 우리의 금강산은 조물주가 준

크나큰 은혜이다.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백두의 구름과 한라의

구름이 손에 손잡고 금강산에서 춤을 추게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기상 금강산아, 나는 너를 보았다. 여기 금강산이

있어 우리 겨레가 숨 쉬고 있는 것을. 만물상의 모든

형상이 우리에게 희망과 힘과 그리고 미래로

향한 비상을 꿈꾸게 한다.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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