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얼 굴 / 조경희

윤소천 2015. 7. 16. 21:40

 

 

 

얼굴은 가지각색이다. 둥근 얼굴. 긴 얼굴. 꺼먼 얼굴.

하얀 얼굴. 누런 얼굴 다 각각 다르다. 얼굴은 바탕과 색깔이

다를 뿐만이 아니라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눈. . , 어느

한 부분이나 똑같지가 않다. 이렇게 똑같지 않은 얼굴 중에서

종합적으로 잘 생긴 얼굴 못 생긴 얼굴을 발견 할 수 있는

것과 생김새는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인상이 좋고 나쁜 것이

표정의 초점을 이루는 것이다. 첫인상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자주 만날수록 그 우락부락한 모습은 깨끗이

사라지고 차차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핏 보아서

첫눈에 들었는데 두 번 세 번 볼수록 싫어지는 얼굴이 있다.

 

지금도 내 생김생김이 퍽 인상이 나쁘지만 일찍이 나는

얼굴이 예쁘지 못해서 비관까지 한 적이 있었다. 여학교 일학년

때라고 생각한다. 나하고 좋아 지내던 상급생 언니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나의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언니처럼 믿고

의지해 오던 상급생 언니, 그리고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절친한

친구를 잃은 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때 나는 내 친구가

나보다 뛰어나게 예쁘기 때문에 패배한 것으로 자격지심을 먹고

그 당시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왜 나를 보기 싫게 낳아

주셨느냐?”는 원망스러운 항의의 글을 보냈다. 그 때 아버지는

나 같은 철부지를 점잖게 상대를 해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회답의 내용이란, 대개 인간은 얼굴이 예쁜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타이르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얼굴 외양이 예쁘고 마음 문제 때문에 깊이

고민하던 나에게 아버지의 그런 하서下書가 위로가 될 리

만무하였다. 얼굴 외양이 미운 모습은 영원히 가다듬기

어려워도 마음씨란 수양이나 교양으로서 선을 긍지로 삼을 수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어여쁘지 못한 내 얼굴이지만 별 구애 없이

살아오게 되었다. 동무들 중에서 왜 당신은 그렇게 못 났오?”

하고 놀려대는 일이 있어도 나는 태연자약할 수 있는 기품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일찍이 내 애인으로부터 당신은

과실로 치면 배()같은 사람이오.”라는 찬사를 받은

기억이라든지 그밖에 남들이 밉다고 하건만 그와는 반대로

나를 귀엽다고 하는 R형 등이 옆에 있어서 마음 놓은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주신

훈시가 나이가 들면서 한층 생활의 신조로 되어졌기 때문이다.

, 사람은 외양의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이 고와야 하느니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다분히 진리와 진실을 품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봐서 유명한 관상가도 관상은 즉 심상(心相)

이라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얼굴의 아름답고 미운 생김새로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쓰기에 달려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치이리라!

 

또한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고, 고대 신화에도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불행했던 이야기들이 많다. 옛날 약탈 결혼 시대에

예쁜 색시가 딴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 동리 총각이 붙잡아다가

늘씬하게 두드려 댄다. 정신이 없어서 쓰러져있을 때 업어다가

장가를 든다. 너무 심하게 맞으면 생명이 위험하기도 하니까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나온 모양인데, 지금에 있어서도 미인의

쟁탈전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외양이 예쁜 미인을 전취하기

위해서 급급하는 인사의 수는 많으나 마음이 고운 미인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인사의 수는 극히 적음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호화찬란하게 포장된 상품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기

곤란하듯이 최신식으로 메이크업한 얼굴 속에서 누가 진정 좋은

사람인가를 발견하기 힘든데도 이유가 있으리라. “열 길의 물

깊이는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듯이 얼굴

생김새가 둥글고 길고 마르고 살찌고 한 각가지 모습에서 어느

누가 진실한 사람인가를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만이 있는가 하면 밝은 태양과 광명이

있듯이 천차만별의 얼굴들 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얼굴들이

지닌 표정의 색깔이란 막연하나마 좋은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마디로 좋은 인간성의 표현인 것이다. 인격이나 교양 지성

등등이라고 해도 좋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진실한 의미의 표지일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좋아 달라는 말이

아니다. 어떻게 좋아야 한다는 구체성이 발견되고 표시되어야

한다. 원래 사람이 사회와는 별로 관련이 없이 지내게 된다면

홀로 좋은 것으로 시작되고 혼자 좋은 것으로 그치면 된다.

그러나 복잡하고 귀찮은 수속이나마 최고조로 발달된 문명국

사람들이 지키고 애쓰는 질서에 대해서 보조를 아니 맞출 수

없다. 자비를 목표로 삼는 종교인의 얼굴에서 무자비한 표정이

장식되었을 때 실망은 크다. 일반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어야할 지도자나 교육가의 얼굴에서 지지 불그레한 야망과

욕심만이 만만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면 깨끗한 물이

흘러나가려는 풍경을 사심 없이 바라보는 버릇을 익혀야 한다.

그 밖의 최소한도 자기 이름 석 자 밑에 집 가()자의 글자

한자씩을 덤으로 붙여 부르는 영예를 자랑하려면 우선 얼굴의

표정부터 고쳐야 한다. 또한 체면이니 칠면피니 하는 말에 대한

의식도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 모나리자의 미소

아름답게 느끼듯이 아름다운 얼굴 바탕의 아름다운 인품을 느낄

수 있으면 이에 더한 바람은 없을 줄 안다. 미남의 남우

로버트 테일러의 미보다는 희, , , 락의 곡절이 조화의

미를 가져온 버나드 쇼 옹의 얼굴에서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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