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해인으로 가는 길 / 도종환

윤소천 2014. 3. 19. 18:09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

 

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

 

그래도 신을 벗고 바람이 나뭇잎과 쌓은

 

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지난 몇 십 년 화엄의 마당에서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며 한 세월 벅차고 즐거웠으나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 간다

 

애초에 해인에서 출발하였으니

 

돌아가는 길이 낯설지는 않다

 

해인에서 거두어 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다

 

그땐 화엄과 해인이 지척일 것이다

 

아니 본래 화엄으로 휘몰아치기 직전이 해인이다

 

가라앉고 가라앉아 거기 미래의 나까지

 

바닷물에 다 비친 다음에야 해인이다

 

그러나 나는 해인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지친 육신을 바랑 옆에 내려놓고

 

바다의 그림자가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있다

 

지금은 바닥이 다 드러난 물줄기처럼 삭막해져 있지만

 

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

 

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

 

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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