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새鳥 아줌마의 편지 / 이해인

윤소천 2014. 2. 21. 06:35

 

 

                

 

 항상 새를 좋아하고 사랑해 왔지만 나는 요즘 더욱 새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이젠 단순히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새들의 생태를 살펴보고 연구하는 일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책을 뒤적이게 되었다. 이 모두가 몇 년 전에 알게 된

일본의 와키타 가즈요脇田和代 아줌마 덕분이다. 스스로

새에 미쳤다고 해서 내가 새鳥 아줌마라는 별명을 붙였더니 편지를

쓸 때 마다 새 아줌마라고 쓰고, 늘 대여섯 장 되는 편지를 새

이야기로만 가득 채우는 자칭 아마추어 사진작가 와키타 가즈오

아줌마를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아직 만난 일이 없다.

 

 일본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나에게 한국에 온 일이

없는 그가 하늘빛, 분홍빛 편지지에 한국말로 써 보내는 정성스런

편지는 맞춤법이나 문법이 어찌나 완벽한지 누가 읽어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뜻있는 일본인들과 같이 한국어를 공부했고

그 동아리에서는 1년에 한 번 정도 각자가 좋아하는 한국시, 수필, 소설

등을 일어로 번역하여 돌려보기도 했으며, 그것을 문집으로 묶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국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천인

와카타 가즈요 아줌마는 문학을 통해 하느님을 잊고 사는 듯한 

일본인에게 하느님을 전하고 싶고, 자신의 자그만 봉사가 늘 미묘한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증진시키는 데 한몫을

하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기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준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나의 시집들을 선물 받고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특히 <천리향>과

<수녀>라는 시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순수한

뜻으로 나의 시들을 번역하고 싶으니 꼭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서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직접 찍은 새들의 사진에 일일이 설명을 곁들여 나에게

보내주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법, 친해지는 법을 소상히 적어 보내

주는 와키타 아줌마께 나는 가끔 우리나라의 새들이 그려진 우표나

크리스마스 실, 새에 대한 신문 기사나 시들을 모아 보내곤 한다.

한 번은 우리 수녀원 뜰의 까치를 서툰 솜씨로 찍어 보냈더니 일본에선

거의 못 보는 새라며 반가워했다.

 

 ‘처음 보는 한국의 새鳥 우표는 아주 멋이 있어서 감격했습니다.

거기 인쇄된 새들은 일본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른바 진조珍鳥들인데

그런 새들을 한국 우표들을 통해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일본의

새 아줌마를 위해 귀중한 우표를 보내 주신 수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텃새라는 크리스마스실을 보니 모두 이곳에서도 볼 수 있는

새들이기에 아주 기뻤습니다. 흔히 가깝고도 멀다고 표현되는 일한관계지만

 먼 듯하면서도 실은 가까운 나라임을 새들이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수녀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마음만은 10대 소녀인가 봅니다.

방 안은 새들의 사진, 달력, 공원에서 주운 깃털, 새 그림이 인쇄된 손수건,

방석, 등 여러 가지로 어수선 합니다. 남이 보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모두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요즘도 틈만 있으면 우리 남편과 함께

들이나 강가에 가서 새들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새 이름에 관해서는

 그러니까 수녀님보다 좀 많이 알고 있는 셈이지요. 새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만 보고 많은 사람들은 새들을

크게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새들의 생활이란 수녀님께서 쓰신 것처럼 자유로운

반면에 실로 고독하고 가혹한 조건에 차 있습니다. 병이 들어도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제 무서운 적들의 먹이가 될지 모르는

데다 겨울에는 이사라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새들의

관찰을 통해 자연과 친해지게 되면서 제일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나 물질에 대한 욕망이 많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고 하루살이 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욕심을 내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양식을 탐내지 않는 새들, 모든 것을 자연계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 은혜를 다시 자연계로 환원할 줄 아는 그들에게

저희는 좀 더 겸허한 마음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새들에 대한 아줌마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의 편지들은

항상 자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얼마 전에

그는 을숙도와 주남저수지가 등장하는 한국 시인들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시들을 몇 장 복사해 보냈다. 아름다운 한국시들을 읽을 때마다

고생하며 한국말 공부한 보람을 느끼며, 특히 새가 등장하는 시들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날더러 더욱 새와 친해지고

새에 대한 시들을 많이 써달라고 주문하는 새 아줌마, 아직 한 번도 만난

일은 없지만 새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진 와키타 가즈요 아줌마의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며 언제나 삶에 대한 기쁨과 희망, 새에 대한

애정이 출렁이는 그의 최근 편지를 다시 읽어 본다.

 

 ‘나무 위에서 혼자 쓸쓸히 우는 티티새 소리를 듣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철새들 중에는 아직 어린 새들도 있답니다.

아시면 웃으시겠지만 철새들이 이동할 시기에는 하느님께 기도할

때마다 맨 마지막으로 철새들의 안전과 무사함을 비는 것이 일과처럼

 되고 있습니다. 작은 몸으로 있는 힘을 다 내어 날갯짓하면서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날아가는 철새들. 그 목숨을 건 여행은

정말 감동적이고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날아간 철새들이

그곳 수녀원에서 잠시 놀다 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만나시면 안부 전해 주십시오......

 

 이곳에선 동백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는데 그 꽃을

매우 좋아하는 동박새나 직박구리들은 오죽이나 기뻐하고 있을까

싶어 저도 즐거워집니다. 먹이가 적어지는 이 시기에 그 빨간 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들의 식사 풍경은 언제 보아도 흐뭇한 것인데 엄마새가 먼저

새끼들에게 큰 조각을 먹이고 자기는 작은 것을 조금밖에 먹지 않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찡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떤 짐승이고

사람이 그들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면 그들도 사람을

신뢰하고 편안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날려 보내주신 새들과 나비 떼는 예쁜 꽃 카드와

함께 현해탄을 건너 무사히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선물을

독차지하는 것이 미안해 카드는 젊은 친구에게, 나비 실은 미친 또

한 사람의 새 아줌마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둘이서 기쁨을

나누면 기쁨은 곱절이 된다고 말들을 하는데 저는 덕분에 세 배나

커진 기쁨을 맛보게 된 셈입니다. 주님께서 수녀님의 시의 꽃밭을 전해

주셔서 더욱 향기로운 꽃들이 많이 피어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읽고 싶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동 톳제비 / 권정생  (0) 2014.03.11
매화찬梅花讚 / 김진섭  (0) 2014.03.02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0) 2014.02.18
두 시인의 마음 / 고은  (0) 2014.02.06
발바닥이... / 김수봉  (0) 201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