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남은 기쁨은 버리지 못하던
해 지는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잡고 웃던
해서 눈물겹던 사내여 오라.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오후에는 배가 안 고프고
언덕에서 내려뵈던 깊은 황혼
캄캄하게 그 황혼 속을 달려가던 사내여 오라.
겨울날 빈터에 몰려오는 바람소리
그 밑에 엎드려 얼음으로 목을 축이고
얼어붙은 못 가에
등을 들판으로 돌리고 서서
못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바라 볼 때
몸과 함께 울던 우리의 옷을 보라.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손
그 떨리는 손에는 네 목을 잡고
머리칼 날리며 빙판에 서서
서로 마주 보며 네 목을 잡고
내 들려주리
쓰러지지 않았던 쓰러지지 않았던 사내의 웃음을.
어둡다 말하면 대답소리 들리는
쇳날을 만지면 살이 떨어지는
그런 떨리는 노래는 이제 우리에게.
서로 붙잡은 우리의 어지러움
어지러움 속으로 길은 헐벗고 달려가고
그 길 끝에 열려있는 술집은 이제 우리에게.
친구여 너는 술집의 문을
닫아도 좋다.
문을 닫아도 바람소리 바람소리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오후에는 배가 안 고프고
그때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기억하라.
열린 채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기억하라.
하면 아침이 눈길 위로 올 때까지
우리 서로 얼음 냄새를 풍기며
때로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줄어드는 심지를 바라보며
단추 떨어진 우리 젊은 날의
어둡다 말하며 벗어던진 옷을 말리자.
황동규(黃東奎)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서울대 교수
1958년 현대문학등단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
<미시령 큰바람> <비가>등 있음.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맏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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