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로 7
오늘 하루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키 큰 석양이
금박(金箔)의 무거운 성서를 들고
가로수에 기대어
바람의 연음부(連音符)로
긴 옷자락 펄럭이며 서 있는
투명한 생의 한때
긴 그림자 앞세우고 돌아가는
황혼의 한없이 깊어지는 눈길 가슴으로 지하(地下)로
내려가는, 비로소 하루의 꿈에서 깨어나는 시간
세기를 넘어 걸어가는 젊은 날의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뒷모습 같은 노을 속으로 들어서면
골목 안 가로등에 등불 켜진다
나는 이 도시에서 칠십 년 넘게 긴 꿈을 꾸었고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낯선 나라로 떠나야 한다
그렇게 한 생애 걸어서 당도한
지상의 황혼이 새삼 아름다워
들끓는 여름 들과 몇 개의 산맥을 소리 없이 넘어온
황혼이 아름다워
손 놓고 노을 속에 묵연히 서 있다
돌아갈 길도 잊어버리고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 로 9 / 홍윤숙 (0) | 2015.02.23 |
---|---|
귀 로 8 / 홍윤숙 (0) | 2015.02.19 |
귀 로 6 / 홍윤숙 (0) | 2015.02.12 |
소 금 강 / 나석중 (0) | 2015.02.11 |
괜 찮 다 / 나석중 (0) | 201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