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헌(茶來軒)에서 살던 때였다. 뜰에는 몇 그루의
장미꽃이 피어, 담담하던 내 일상에 빛과 활기를 드리워주었다,
아침이슬을 머금고 갓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대했을 때, 말문이
막히고 눈과 귀가 멀려고 했었다. 지극한 아름다움 앞에서 전율을
느끼던 그런 시절 이었다. 장미 가시에 찔린 데가 덧나
사뭇 불안해하면서 병원을 찾아다니던 때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아름다움 속에도 가시가 있었던 것이다. 어디 가시뿐이랴,
풍뎅이와 진딧물이 노상 아름다움을 괴롭힌다. 절에서 일하는
일꾼이 하루는 분무기를 매고 채소밭쪽에서 오는걸 보고
장미에도 진딧물 약을 좀 뿌려 달라고 부탁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잎들이 시들시들 쳐져있었다. 약을 너무 진하게
타서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 날은 까맣게 타들어가서 잎이 떨어졌다.
마음씨는 착하지만 머리를 몹시 아끼는 우리 조 서방께서
제초제를 뿌린 탓이었다. 월남전에서 그토록 무성한 정글도
말라버리게 한 고엽제를 전장이 아닌 화단에 썼던 것이다. 아름다움이
교살 당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했었다.
길들인 것에 대한 아픔이었다. 내출혈 같은 아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뜰에서는 절대로 꽃을 가꾸지 않기로 했다. 장미 곁에
소담수레 피어있던 패랭이까지도 포기 째 떠다가 큰절에 옮겨 심을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해서 나는 빈 뜰을 지니게 되었다.
빈 뜰을 바라 볼 때면 내 속 뜰에는 마른바람이 일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항아리를 대할 때처럼 서운하면서도
넉넉한 그런 느낌이었다. 산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꽃 같은 걸 심지
않기로 했었다. 창밖에 파초나 심어 여름의 햇볕을 가리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집터를 고를 때부터 둘레에 달맞이꽃이 듬성듬성 자생하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여름철만 되면 온 뜰에 무더기로 피어나 한꺼번에 수만
송이의 꽃을 보게 되었다. 6월 어느 날 아침 뜰에 나가보니 안개가
자욱이 서려 있었다. 얼핏 보니 안개 속에 노랑나비가 몇 마리 달맞이꽃
잎 새에 붙어있었다. 웬 노랑나비인가하고 들어다봤더니
간밤에 처음으로 피어난 꽃이었다.
달맞이꽃은 해질녘에 핀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뜰에 나가면
수런수런 여기저기서 꽃들이 문을 연다. 투명한 빛깔을 보고 있으면 그
얼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박 꽃처럼 저녁에 피는
꽃이라 그런지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혼자서 피게 할 수 없어 여름 내
나는 어둠이 내리는 뜰에서 한 참을 서성거렸다. 그 애들이 없었더라면
여름의 내 뜰은 자못 삭막할 뻔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마른 바람이 불어오자 꽃들은 앙상한 줄기에다 씨를
남긴 채 자취를 감추어 갔다. 오늘 아침 마지막 꽃대를 거두어 주었다.
이제는 텅 빈 뜰, 어디에서 플루우트 소리가 들려 올 것 같다.
머지않아 이 빈 뜰에 가랑잎이 내릴 것이다. 여름철 무수히 피어난
그 꽃들의 넋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
숲을 지나는 밤바람 소리에 깨어나면 그 애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런 일로 해서 가을은 한 걸음 한 걸음씩
내 속 뜰까지 다가서고 있다.
( 1977.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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