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걸어서 간다 / 홍윤숙

윤소천 2015. 2. 3. 16:05

 

 

 

 

걸어서 간다

 

 

 

   

 

   

날마다 날마다 걸어서 간다

걸어서 밖에는 갈 수 없는 길

싫어도 가야하는 태어난 자의 숙명의 길

길도 없는 길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서 간다

가는 길이 어딘지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고 알아도 소용없는

멀고도 아득한 팔십년의 길

잠자는 시간에도 꿈을 꾸면서도

유예없이 떠밀리고 끌려서 간다

이제는 남은 산하 얼마나 되는지

그 길엔 가나안 땅도 샬롬의 우물도

약속이 없는

꽃소식도 새소리도 끊긴 지 오래인

모헨조다로의 황량한 기원전 벌판을

걸으며 지척대며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봄 들의 노오란 민들레 꽃 한 송이

잔잔히 피어서 순식간에 하얗게 사위어

아무도 모르게 깃털 같은 홀씨로

호르르 호를 나르는 꿈을

이 세상 아름다운 마지막 비상을

창공에 그리며

날마다 아픈 다리 절뚝이며 걸어서 간다

연꽃 같은 꿈 한 송이 하늘에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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