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정(靜)과 동(動) / 구 상

윤소천 2014. 10. 31. 16:18

 

 

정(靜)과 동(動)

 

   

 


 

팔당(八堂)과 양평(楊平) 사이

후미진 강기슭 빈 조각뱃전에

한켠엔 내가 앉고

한켠엔 노처(老妻)가 앉아

바람도 없이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있다.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제 백만의 신도가 모인 여의도(汝矣島)

그 찬란한 가설제단에 앉으셨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몇 달 전 여성잡지에서 뵈온

가야산(伽倻山) 바위위에 앉으신 성철(性徹) 종정과의

두 모습,

   

한 분은 인파(人波)의 그 환성 속에 계시고

한 분은 자연의 그 적막 속에 계시나

두 모습 그대로가 진실임을 의심할 바 없거늘

과연 이 대조(對照)는 무엇을 뜻함인가?

 

한 분이 행하시는 인위(人爲)의 극진(極盡) 속에도

한 분이 행하시는 무위(無爲)의 극치(極致) 속에도

신비가 감기기는 매한가지어늘

과연 이 부동(不同)은 무엇을 말함인가?

   

저 두 분의 모습이 다 함께

진리의 체현(體現)임에 다를 바 없으니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저녁노을과 함께 숨을 죽이듯

잔잔해진 강물을 바라보며

노부처(老夫妻)는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일어설 줄을 모른다.

 

 

* 팔당(八堂)과 양평(楊平): 한강 상류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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