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내 고향 / 윤오영

윤소천 2014. 1. 8. 14:54

 

 

 

 

 양근楊根 연양리延陽里는 내가 어려서 살던 고양이다.

해외에 나가 화려한 문명, 풍족한 도시에 살면서도 잊히지 않고 그리운 것은

황폐하나마 고국의 산천이라고 한다. 내 고향의 산천이 이다지 그리운

것도 반드시 산이 삼각산보다 웅장하고 물이 한강수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오직 정 깊었던 탓이다. 길건 짧건 기쁘나 슬프나 인생 백년은 하나의 여정旅程.

 나그네의 향수는 물리칠 길이 없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옛터에서 일생을

 보내도 향수는 느끼려니, 동심을 키워준 고향이라 어찌 아쉽고 그립지 아니하랴.

나는 현실이 괴로울 때면 내가 왜 이 나라에 태어났던가. 남과 같이 외국에나

태어났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아니 하였으련만, 이 나라에 태어 난 것을 원망하고

 미워도 해 본다. 차라리 국적을 바꾸고 외국에 귀화나 해버릴까 안간힘도 써본다.

 

  그러나 막상 지금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이 “극락세계 연화대蓮花臺이든

소원대로 보내줄 터이니 갈 데를 말해라” 한다면, 나는 극락도 연화대도 다

고만두고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할 것이다. 문화도시라는 파리보다도

풍치의 나라라는 스위스보다도 정겨운 것이 내 나라요, 천하명산 금강산보다도

십리명경十里明鏡 경포대보다도 그리운 것이 내 고향의 산천이다. 화류계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많은 남자와 사랑하고 교제하고 살림하고 살아봐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이 머리 얹어준 첫 사내라는 것이다. 연애도 아니고

결혼도 아닌 그 밤이, 애인도 아니요 남편도 아닌 그 사내가 다변多變한 생애와

늙어가는 연륜 속에도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망스럽고 미워도

우연히 그를 만난 때처럼 와락 반갑고 눈물 맺히며 설레는 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심정은 내 모르거니와 만일 그렇다면 고향도나를 머리 얹어준 사나이라 할까.


 멀리 창공에 솟은 용문산은 그대로 기내畿內의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칠읍산 서석산을 누가 알기나 하랴마는 내게 있어서는 백두산보다 높고

 금강산보다도 신기했던 산들이다. 안개 속에 잠긴 그 신비한 모습, 석양에

 물들은 그 고운 빛깔, 꽃 피고 단풍들 때 그 찬란한 그림, 비 갠 뒤의 맑은 얼굴,

눈 온 뒤의 장엄한 기상, 얼마나 시시각각으로 내 눈을 놀라게 했던가.

 언덕위에 서 있는 느티나무, 잎 새마다 서늘한 매미소리, 방죽 앞에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마다 흐르는 꾀꼬리 소리, 이것은 다른 시골서도 맛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밑돌 우물가에서 미나리를 씻으며 웃어주던 을순이의

피어오르는 모습은 나타날 리 없다. 저자나무 밑에서 도루소 강변에 떠가는

포범布帆을 세어보며 주무르다가 놓고 온 그 매끈매끈한 조약돌은 영영 찾을

길이 없다. 그러므로 곳은 때와 어울려서 하나인 것이다. 때가 사라지면 곳도 반은

사라진 것인데 곳조차 변함이 있어 서랴. 향수란 여기서 더욱 짙어지는

것이 아닌가. 함박꽃도 탐스럽고, 황국黃菊도 유난히 많던, 그리고 봄에는

황금 같은 개나리 단장短墻에 진달래 까지 수놓았던 이웃집 약방

사랑의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도루소 강물에 비친 복숭아꽃은 많기도 하고 곱기도 한 꿈속의 비단 같다.

 이 강에서 나는 ‘독누리’는 숭어보다 크고 맛이 진기한 이곳의 특산이다. 사립 쓰고

 견자 멘 어옹들이 강가로 모여 든다. 독누리가 살찔 때면, 노인들의 시회詩會와

선유船遊가 그칠 날이 없었다. 달밤의 선유는 용궁의 신화 같았다.

 우리 집은 산 밑에 있었다. 얕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 방죽에 수양버들 늘어진

사이로 포범이 떠가는 강물이 비단결같이 고왔다. 동편 울 밖으로는 청청한

솔밭이요, 서편 언덕 펀펀한 잔디밭 가운데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고목이

있었다. 실개천 맑은 도랑물은 주야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어저 마마, 어쩌저.”

소 몰고 밭가는 소리는 그 한적한 여운이 아직도 내 귀에 남아 있는 듯하다.

 

집 앞 방죽가에 드문드문 점점이 흩어져있는 검은 바위들을 연분석燕糞石

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 터가 연소형燕巢形이다. 풍수가적 견지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나 그럴싸한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어려서 이 아늑한 제비집 속에서

자란 셈이다. 그 후 이 아늑한 것을 버리고 밤나무 벌판의 까막까치 떼를 따라

영일寧日이 없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제비집 같다던 우리 집은

헐리고 솔밭도 버들숲도 없어지고 풍토도 인물도 모습은 바뀌어 지명조차 변했다.

그것이 더욱 내 향수를 자아내는지도 모른다. 늙어 갈수록 한적한 옛 마을이

그리워지는 것도 인생의 본능의 하나일까. 언제인가는 영원히 한적한

데로 돌아가야 할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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