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밍근이 / 송규호

윤소천 2014. 1. 12. 15:46

 

 

 

 

 밍근이는 오늘도 싱긋 웃는다. 짚뭇을 한 아름 안고

싱긋 웃으면서 창호네 돌담길을 돌아간다. 여든이 넘도록 장가 한번

가보지 못한 그에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거리라고는 없다.

두툼한 입술 위에 다갈색 수염 몇 개를 늘어세우고 다니는 그의 베잠방이

허리띠에는 언제나 곰방대가 매달려있다.  똥똥하여 힘깨나 있어

보이지만 워낙 꽤가 없어, 씨름 손만 잡으면 누울 자리부터 보고 주저앉은

밍근이다. 일생을 남의 집에서만 보내야하는 그에게는 돈도 법도

소용이 없다. 하물며 명예나 지위 같은 것이 그의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손길이 야물지 못한 탓으로 가끔 소박 아닌

구박을 맞아도 투덜거리거나 옹알거리는 일이 없이

싱긋 웃으며 돌아서는 천성이다.

 

 “밍근이, 돼지는 왜 죽어?”

 “간 끄네 묵어놓고......”

 

 과연 밍근이 다운 대답이다. 회오리바람을 잡으려고

설렁거리다가 웅덩이에 엉덩방아를 찧고도 싱긋 웃는 됨됨이다.

생일이 언제냐고 물으면 그 둔하고 무뚝뚝한 말투로 봉화와

한동갑이라고 한다. 부모를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 확실한 생일이

 있을 리 없다. 봉화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날, 밍근이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가는개 쪽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오던

하나의 근거마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눈 내리는 밤, 불 꺼진 질화로에 씨 고구마 두어 뿌리를

묻어두고 기다리다 못해 그만 잠이 든 밍근이다. 거친 숫돌에 고지랑물을

끼얹어 낫날을 세우고는 흥이 나서 자기 엄지손가락까지 베어 떨어뜨린

밍근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잘살등에 벼락이 떨어진 새벽, 밍근이는 겁에

질려 이불을 둘러쓰고 와들와들 떨었다. 어제 수구리네 개를 걷어찬 죄로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앓아누웠을 때에도, 힘을 내어

어서 일어나라고 하면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힘을 써 보이는 밍근이다. 

 

오늘도 밍근이는 잎담배를 꼬기작거려서 대통에 넣어

 물고 산으로 간다. 지나치게 큰 바지게를 지고 봉지내기로 간다.

묵은 그루터기의 뿌리를 캐낸 뒷자리를 다시 흙으로 메운다.

그러고는 그 위에 솔씨방울을 올려놓는 것이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밍근이의 이 나무뿌리 캐는 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리

주변에 밍근이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는 하루 밤의 만리장성도 모래

위의 기와집도 모른다. 여승의 손목을 잡을 만한 버릇없는 아큐도

 아니요. 함부로 덤비는 돈키호테도 아니다. 더구나 햄릿의 비극으로

막을 내릴 밍근이는 더욱 아니다.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고

상식에서 먼 밍근이지만은 누구도 그를 업신여기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구덩이 마다 솔 씨를 심고 다니는 밍근이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규호, 언제 갈랑가? 그것 써주랑께.” 

 

 몇 해 전에 약속한 것을 아직도 잊지 않은 밍근이다.

윤호가 집을 지을 적에 얻은 조그만 판자에 비문을 써달라는

부탁이다. 봉지내기에서 나무뿌리를 캐낸 가장

 큰 구덩이가 자기의 무덤자리라고 한다.

 

      금당도에서 가장 높은 산

    봉지내기에 누워

 오늘도 밍근이는 싱긋 웃는다.

 

 무슨 뜻인 줄도 모르면서 이 무덤표를 소중히 안고 싱긋

웃으면서 돌담길을 돌아가는 밍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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