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밤사이에 내린 첫눈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와, 눈 왔다! 일어나!” 식구들 중에 먼저
일어난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치면 잠옷 바람으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다가 가슴 벅찬 감동에 파르르 몸을 떤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밤사이에 한껏 내려 나뭇가지마다
소복소복 눈꽃을 피우고 있는 함박눈을 보며 “올해 첫눈이야!
첫눈이 내렸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이의 모습부터 먼저 떠올린 기억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은 왜 첫눈이 오면 그토록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 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트불을 밝히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는 군밤장수한테 군밤을 사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젊음을
잃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첫눈은 첫사랑과 같은 것인가.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창밖을 본다.
거리의 나뭇가지마다 켜켜이 눈이 쌓여 있고 하늘은 더욱 푸르다.
첫눈이 내렸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을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리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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