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점 / 도종환

윤소천 2014. 8. 8. 07:23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안개에 잠겼던 산은 어둠속에 몸을 묻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에 사과꽃 가뭇없이 지는 동안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다 버리셨는지요

저도 그 할머니에게서 떡을 사 먹었습니다

이제 막 솟아나는 붓꽃 꽃대를 꺾어

현재심에 점을 찍었습니다

허기와 목마름에도 솔직해야 하고

그래서 정직하게 노동해야 하고

업의 시작인 몸 그 몸의 목소리에도

있는 그대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데리고 가는 길이

등짐을 지고 늪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하여도

그를 버리고 저만 강을 건널 순 없습니다

자식이 번뇌의 씨앗이란 걸 알지만

샤카무니께서 그러하셨듯 발 씻는 물과 물그릇을

산산조각내면서 꾸짖어 가르쳐서라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과 함께 물을 건너 강가에 이르지 않고

저 혼자만 꽃등을 밝힐 순 없습니다

내 이런 말과 마음이 카르마의 시작임을 압니다

그러나 내 몸이 업의 출발이라면

업의 끝도 거기 있지 않겠습니까

카르마의 바다 한가운데를 건너가야

카르마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 있는 건 아닌지요

불을 꺼버리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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