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고요한 강 / 도종환

윤소천 2014. 8. 6. 20:14

 

 

                                           고 요 한  강



 

                            

강은 다시 고요해져 흘러간다


 합수머리에 들어설 때나 살여울을 지날 때면

장터처럼 왁자지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은 저녁이 오기 전에 평정을 찾으려고

자꾸 가슴을 쓸어내렸다


억센 바위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도 가야하고

비단뱀처럼 굽이치는 강허리를 돌아서다가

바위절벽에 어깨가 얼얼하도록 부딪치고 나면

저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나왔다

쓸물이 되어 피할 수 없는 한 시대의 절벽을

눈 질끈 감고 뛰어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소를 지나면서 다시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도시의 밤을 지날 때는 많이 흔들렸다

원색의 불빛과 휘황한 풍경을 빠져나가며

강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역류하여 도시의 하천으로 편입되는 쪽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 꼬리 쪽에서 몸을 간질이며

스며 올라오기도 했다

몇몇 젊은 물줄기들은 도시를 빠져나오는 동안

사라지고 없었다


사랑스런 이의 목소리를 듣던 날은

그만 거기 멈추어버리고 싶었다

오래 그리워한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 옆에

몸을 부리고 눕고 싶었다

물푸레나무가 푸른빛을 지니고 있는 동안

그늘 아래 걸음을 멈추고 푸르게 누워 있고 싶었다

강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강은 다시 고요해져 흘러간다

아침 물안개에 얼굴을 씻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고요하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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