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어리석은 희생 / 홍윤숙

윤소천 2013. 12. 15. 05:11

 

 

 

 배신한 연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사랑에 있어 배신이란 사랑의 끝장을

의미하는데, 자신이 바쳐온 믿음과 헌신, 소망 등 일체의 것을 유린하고 말살해

버렸는데, 그런 배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해선

안 된다. 용서한다면 거짓말이다. 만일 용서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타협이고 심약한

미련이다. 배신한 연인을 다시 용납하여  그 전과 같은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구차하고도 어리석은 미련의 소치다. 그러한 용서는 용서가 아닌 일시적 타협으로,

풀리지 않은 옹심이 가슴속에 남아 있어 걸핏하면 최초의 용서하지 않은 분심憤心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사랑의 배신이란 결코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배신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죽도록 옹심을 품고 미워해야 한다.

끝까지라도 쫓아가 저주해야 하고 자나 깨나 그것만 생각하고 이를 갈아야한다.

 

 그런데 우습지 않는가. 도시 무엇 때문에 배신한 이를 위해, 내 온 시간

온 정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내 진실과 비애를 쏟아 그를 생각해야 하는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사람인가. 귀중한 눈물과 미움을 바꾸어 말하면 내 전부를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는 사람인가. 어리석다. 어리석은 희생이고 낭비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느 순간에라도 들지 않는가. 그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깨달을 때 비로소 눈이 뜨이고 마음이 열린다. 용서는 깨닫는 일이다.

 받아  들이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워 던지는 일이다. 제 자리 걸음에서

한 단계 뛰어넘는 일이다. 용서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은

일보다는 쉬운 일이다. 용서가 한 번 자기를 비워 던지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만

하면, 그대로 새로운 내일로 직결되는 새 희망 새 삶인데 비해, 용서하지 않은

일은 스스로 내일을 끊어버리는 절망과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산마루만 넘으면 평지이지만 용서하지 않는 일은 영원히 숨찬

산마루다. 용서하는 일, 그것은 나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며 높이는 일이다.

용서하지 않는 일은 나를 영오에 가두는 길이며 상대방을 부질없이

높여주는 일이다. 그럴 가치도 없는 배신자를 끊임없이

생각해 줌으로써 높아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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