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정념(情念)의 기(旗) / 김남조

윤소천 2023. 10. 18. 14:53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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