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다시 길 위에서 / 김정희

윤소천 2023. 6. 15. 11:35

 

 

누가

이 길을 버리고 갔을까

나무그늘 아래 빈 의자

침묵이 먼지와 섞여 반짝이고

길 건너 아파트 창문이 예고없이 닫힌다

 

새들은 콕! 콕! 날아간 벗들을 

허공에서 호명하고

예민해진 꽃잎이 슬쩍 지는 사이

저녁이 노을빛 물방울에 젖어

휘청거린다

 

자세한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멈추어야 할 곳을 그냥 지나친다

이 저녁에 길을 잃었다

제 자리 걸음으로

제 몸 속을 열고 나온 달팽이

길을 가다 물결처럼 구겨진다

 

울음의 마디를 세는 당신의 생

종착역은 어디일까

뿌리까지 보이는 길은 없으므로

한 시절 두리번거리며

눈이 아픈 바람 속이라도

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낮은 지붕아래 불빛을 만나지 않겠나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 정 / 김광석  (0) 2023.06.28
무등산 연가 / 김소정  (0) 2023.06.18
그대 눈빛에서 / 용혜원  (0) 2023.06.12
망인당 (望仁堂) / 오소후  (0) 2023.06.12
무등산 연가 / 김소정  (0) 2023.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