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 박노해

윤소천 2023. 6. 8. 07:40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산악의 염소나 따 먹던 빨간 열매를

커피로 붂아내 오늘 인류의 만남 가운데

그윽한 향기로 놓아준 사람은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들짐승이나 씹어 먹던 억센 풀을 길러

오늘 김 오르는 쌀밥으로 구수한 빵으로

식탁 위에 올려 놓아준 사람은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땅바닥에 떨어져 썩어가던 과실을 빚어

오늘 붉은 술잔을 부딪혀 가슴을 데우며 

미소 짓고 노래하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나를 이토록 떨림으로 뒤흔드는 

시와 노래와 그림과 춤과 기도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낳아준 사람은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산맥과 광야와 사막과 설원을 

헛디딘 발걸음으로 구르고 헤매며

오늘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내어준 사람은

 

누구일까, 최초의 그 사람은

금기된 미지의 것을 향해 첫발을 내딛어

삶의 영토와 인간의 지경을 넓혀준

최초의 패배자, 그 고독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여기의 그대가

불가능한 이상을 품고 다른 길을 여는 

최초의 그 사람이 될지, 누가 아는가

지금 감히 누가 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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