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만귀정 가는 길 / 김정희

윤소천 2022. 8. 8. 07:42

 

 

 

 

너무 늦었을까

습향각 연꽃들은 향기를 가두고

초승달의 쓸쓸한 기울기를

별 하나가 받들고 있다

 

황룡강 강줄기 따라

꼬리를 물던 바람에

묵암정사 푸른 대숲은

울음을 감추고 맞닿은 어깨를

바둥바둥 부여 잡는다

 

만귀정 배롱나무 꽃잎은

노을빛으로 지는데

숲 사이 벌레들의 집이 무사한지

저녁 안개 떠도는 세 개의 섬

눈물 아롱지는 취석(醉石)을 지나

상사화처럼 붉어진 마음으로

성석(醒石)을 밟는다

 

사는 일에 틈새가 성글어져

까닭모를 슬픔에

그대 부재중이고 싶을 때

너무 늦지 않게

한 번은 만귀정(晩歸亭)으로 돌아오라

옛 사람 그리운 목소리

가슴에 별 하나 긋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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