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 구 상

윤소천 2019. 10. 6. 13:15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산정(山頂)에 올라가 붙은

판잣집 창에

머리에 부스럼 자국이 난 선머슴처럼

얼굴을 대고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저기, 흐르는 푸른 강에

물고기들이 흐느적 놀듯이

여기, 황토 굳은 땅에

개미가 들락날락 일하듯이


첫째 우리 인간도

서로 물어뜯지 말고

아우성도 없이 살아야 함을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한낮의 백금(白金) 같은 날빛을

온몸에 받으며

누구나 낙망의 휘장을

스스로 가리지만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마침내

광명을 누릴 수 있음을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몇 뼘도 안 되는 꽃밭에

코스모스가 서서 피고

채송화가 앉아 피는 것을 보고

만물이 저마다 분수(分數)를 다할 때

더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이제사 겨우 눈꼽이 떨어지는

선명(鮮明)으로

진선미가 저렇듯 실재하다는 것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서 알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