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산다는 것  / 박경리

윤소천 2018. 9. 10. 19:31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어디 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 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질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면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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