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가을 집짓기 / 홍윤숙

윤소천 2023. 9. 26. 09:01

 

 

 

돌아가야지 

전나무 그늘이 한 겹씩 엷어지고

국화꽃 한두 송이 바람을 물들이면

흩어졌던 영혼의 양 떼 모아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가서 한 생애 버려뒀던 빈집을 고쳐야지

수십 년 누적된 병인을 찿아

무너진 담을 쌓고 창을 바르고

상한 가지 다독여 등불 앞에 앉히면

만월처럼 따뜻한 밤이 오고

내 생애 망가진 부분들이

수목으로 떠오른다

단비처럼 그 위에 내리는 쓸쓸한 평화

한때는 부서지는 열기로 날을 지새고

이제는 수리하는 노고로 밤을 밝히는

가을은 꿈도 없이 깊은 잠의

평안으로 온다

따뜻하게 손을 잡는 이별로 온다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접속과 소통 / 박노해  (0) 2023.10.04
추석날 아침에 / 황금찬  (0) 2023.09.30
너무 먼 먼 당신 / 김용택  (0) 2023.09.23
고요한 마음 / 이해인  (0) 2023.09.18
수선화를 기다리며 / 정호승  (0) 202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