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두 시인의 마음 / 고은

윤소천 2014. 2. 6. 19:23

 

 

 

   “우리는 시의 육친입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술이 옴짝달싹

못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술의 혈육입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8월 17일 밤 남산 허리의 하얏트 호텔의 만찬장에 였다. 이산가족

방문단 북쪽 인사들과 서울의 내빈들이 어우러져 만원을 이루었다. 나는 

당연히 북쪽 계관 시인 오영재와 한동안 부둥켜안은 몸을 풀지 못했다.

10년 전 남북작가회담의  좌절로 만나지 못한 북쪽 작가 5인 중의 사람이던

그를 기억한다. 당시 그가 판문점 회담 장소에 와서 <자리가 비었구나>라

는 시를 써서 남쪽 작가 5인의 빈자리를 노래한 적이 있다. 2년 전 15일 간의

북한 편력 중에도, 두 달 전 남북정상회담 수행 때에도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러나 남과 북의 두 시인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속으로만 서로 만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두 시인이 만난 인사가 “이제야 만났습니다”였다.

 

 만찬이라고 하지만 그와 나 사이는 어여쁜 술잔만이 건너가고

건너왔다. 술은 최소한 10년 이상의 세월쯤의 우정을 즉각 만들어준다.

그래서 술의 힘은 더욱 고혹적이다. 두 시인의 첫 만남은 그러므로

아주 오래된 우정의 체험을 착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 이 다음에는

넥타이 같은 것 매지 말고 만납시다”라고 내가 말했다.

 “우리 이다음에는 다 벗어버리고 팬티 바람으로 술를 마십시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모국어의 자식이었다. 아마도 그가 다시오면 우리 집에서

재울 것이다. 내 평양에 다시 가면 초대소 보다 그의 집에 가서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고 싶을 것이다. 나는 옆 자리에 있던 화가 정창모도 만났다.

오영재는 그에게 그림 하나 그려 드리라고 말했다. 언젠가 우리 집

바람벽에는 그 그림이 걸려 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선생 호칭이지만

둘이 있을 때에는 형님 동생입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아우님!”이라고 불렀다.

 

 두 시인의 만남은 한 오락지 거짓 없는 하얀 기쁨의 꽃밭이었다.

하지만 두 시인의 앞날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엄연한 사실을 술잔을

비울 때마다 깨우쳤다. 앞으로 모국어 및 동족의 동질성 및 공통성의

크기를 시를 통해 발전시키는 일도 우선적이다. 민족 공동체 실현을 위한

문화적 임무도 닥치고 있다. 합작 작품도 써내야 할 것이다. 오고 가는

일의 의미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문학 혹은 문화의 남북 관계는 경제의

후열에 남겨져 있다는 발상은 경제 자체에도 해로운 노릇이다.

이러한 문화교류의 당위는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다.

두 시인은 이러한 사실의 공감을 나눴다.

 

 다른 이야기 하나 더 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오빠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남쪽에는 그의 형제들과 누이가 있다. 이제까지 그는

북쪽에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으나 서울에 와서 아우였고 형이었고

그리고 오빠였던 것이다. ‘오빠’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씨를

그는 이번에 찾은 것이다.  내가 말했다. “당신의 누이는 당신을

애타게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의 일부인 것 같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두 시인 만의 술잔으로 바빴다.

술은 다디달았다. 술의 상호주의라고 웃었다.

 

 그가 피우는 북쪽 담배 ‘락원’ 한 대를 피워 보았다. 1979년

노동학교를 운영할 때 끊은 담배였다. 그가 말했다. “시인은 이산자입니다”

이 말은 내가 이산가족이 아니라고  말한 데 대한 멋진 시인론이기도 하다.

시인이 본질적으로 세계와 고향으로부터 흩어진 존재라는 것과 우리 민족

통한의 이산을 시의 울음으로 대변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뜻했던 것 같다.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이 남과 북 조국 산천을 떠돌면서 함께 노래하다가

여한없이 죽읍시다.” 분단 전쟁 등으로 생짜 이별의 아픔으로 겪은 울음은

처절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힘이기도 하다.

이 울음바다 속의 첫 만남은 그와 나 사이의 이름 짓지 못한 미지의

서사와 서정에 이미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들의 시가 민족의 공생과 상족 그리고

통일에 기여하는 언어 행위이기를 염원했다. 아직도 시는 조국과

조국 밖에서 사회적 영혼으로 살아나는

 빛이다. 헤어지면서 두 시인의 눈은 젖어 있었다.

 

 

 

 

 

 

'읽고 싶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鳥 아줌마의 편지 / 이해인  (0) 2014.02.21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0) 2014.02.18
발바닥이... / 김수봉  (0) 2014.01.22
할머니들의 말씀 / 김수봉  (0) 2014.01.19
무성영화 / 정호경  (0) 201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