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과거에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있다
처음엔 어두운 터널 끝에서 차차 밝아오다가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확 밝아오는 불빛처럼
과거에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있다
특히 어두운 과거의 불행이 환하게 불이 켜져
온 언덕을 뒤덮는 복숭아꽃처럼 불행이 눈부실 때가 있다
봄밤의 거리에 내걸린 초파일 연등처럼
내 과거의 불행에 붉은 등불에 걸릴 때
그 등불에 눈물의 달빛이 반짝일 때
나는 밤의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인다
멀리 수평선을 오가는 배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등대가 환히 불을 밝히는 것처럼
오늘 내 과거의 불행의 등불이 빛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살아갈수록 후회해야 할 일보다 감사해야 할 일이 더 많아
언젠가 만났던 과거불(過去佛)의 미소인가
불행의 등불을 들고 길을 걸으면 인생이 다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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