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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맑은 햇살 하나가 / 정 호 승

해 뜨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새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누님 같은 소나무가 빙그레 웃는 새해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맑은 연꽃대에 앉은 햇살 하나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당신의 창을 두드리고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사랑하는 일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다시 길을 가게 합니다 어두운 골목 무서운 쓰레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이제 더 이상 당신 혼자 떨지 않게 합니다 쓸쓸히 세상을 산책하고 돌아와 신발을 벗고 이제 더 이상 당신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합니다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과 편안함의 괴로움을 스스로 알게 합니다 때로는 당신 장독대 위에 함박눈으로 내려 당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낮아지게 하고 당신을 낮아지게 함으로써 더욱 고요하게 합니다..

읽고 싶은 시 2023.12.31

촛불 켜는 밤 / 이해인

12월의 밤에 조용히 커튼을 드리우고 촛불을 켠다 촛불 속으로 흐르는 음악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 가고 있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의 수없는 얼굴들을 그려 본다 내가 사랑하는 미루나무 민들레 씨를 강 호수 바다 구름 별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본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읽고 싶은 시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