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부단히 떠나야 한다 / 구양근

윤소천 2020. 1. 24. 17:00

 

 

 

새벽운동을 시작한 지가 꽤 오래 되었다.

6시쯤 일어나 산책길 중간에 있는 화원까지 속보를 한 뒤,

강변둔치까지 가서 운동기구를 이것저것 작동해 본다.

그리고는 다시 속보로 집에까지 돌아오는데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간단한 반복운동을 올해로 27년째

하고 있다. 강변둔치의 운동기구 중에는 25도의 경사로 거꾸로

눕는 기구가 3개 있다. 그 중 하나를 차지하고 거꾸로 누워서

창공을 올려다보는 것은 머리를 비우는 무념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년 10월 초순이 되면 하늘 저 멀리에서

항상 낯익은 장면 하나가 눈에 띈다. 티끌인가 싶어 자세히 보면

한 무더기의 새떼가 푸른 하늘을 배경삼아 흰 구름 사이로

보일락 말락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싸늘해지면 몇 분 간격으로 열 마리, 스무 마리씩 대게 V자형을

그리며 두둥실 떠가는 모습이 보이다가 이내 하늘 한 모퉁이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따금 대열에서 낙오된 듯싶은 서너 마리가

작은 이파리처럼 흘러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짧은 거리를 나는 새는 고공으로 솟을 필요가 없다.

멀리 가는 새만이 높이 나는 법이다. 그들은 아주 멀리 강남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철새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필리핀이 될지

오스트레일리아가 될지 모르는 인간도 상상하기 어려운 멀고 여행인

것이다. 참으로 자기의 생을 건 필사의 비행이 아닐 수 없다.

작은 텃새와 다르게 철새는 색깔도 인간이 조합할 수 없는 천상의

비단 빛이요, 생김새도 대게 다리가 길고 나래가

넓은 고고한 자태의 하늘 새이다.

 

감히 인간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진

철새는 인간의 접근을 반기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높은 기개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물 맑고 좋은 곳에서

부화하고 생을 누리다가도 깃털에 스치는 바람으로 지금이 떠나야

때라는 것을 감지한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머뭇거리면 안 된다.

아무리 힘든 여정이라도, 가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길이지만 미련없이

보금자리를 떨치고 하늘높이솟아 천 길 만 길을 날아가는 것이다.

 

내가 자라던 두메산골 배바우란 동네는 삼십호 쯤 되는

작은 벽촌이지만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당산나무 아래 지게를 받치고 나무하러 가기 위해 모인

총각들이 20여명은 되었다. 당산나무 아래서 한참 장난하고 배를

꺼치다가 지게를 지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땔나무를

하러 논길을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그 총각들은

대부분이 중학교는커녕 초등학교 발도 디뎌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작은

동네에 서울바람이 불어왔다.

 

맨 먼저 서울로 밤 봇짐을 싼 사람은 우리 당숙 아들인

상욱이 형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머릿속에

생생이 남아있다. 어느 날, 상욱이 형은 밤이 이슥하여질

 무렵 어머니를 찾았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형의 행동거지에서

심상찮은 낌새를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은 닭 두 마리의

목을 소리 안 나게 작당히 비틀어 날개 밑에 묻어 보자기에 싸들고

와서 어머니에게만 말하고 몰래 서울로 떠나는 길이었다.

불같은 성질의 당숙이 알면 당장 요절이 난다는 것쯤은 나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안된다고 말린 줄 알았던 어머니의 청천 벽력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생각했다. 시골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어야.

금전리 누님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새벽기차를 타거라.”

 

그렇게 해서 떠난 상욱이 형은 3,4년 후에 사각모자를

쓰고 배바우에 나타났다. 초등학교도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학생이 될 수 있었는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후에 대학입시를 치르기 위해서 상경하여

상욱이 형 자취방에서 며칠 묵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은

옥인동 어느 허스름한 한옥 집을 이어낸 손바닥만 한 방이었는데,

그 어두컴컴한 방에서 배바우에서 올라온 촌뜨기 소년 5명이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형은 서울의 한 동네 신문보급소장까지

맡으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중앙청 옆 어느 건물에 새를 얻어

개교한 K대학 경제학과 학생이었고 대학 태권부

사범까지 맡고 있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 때는 많은 대학들이 누구나 원서만 내면

입학이 가능했기는 하였지만….

 

상욱이 형의 결단에 고무된 배바우 총각들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되면

서울로 간 줄 알았고, 그로부터 한 두 달 만에 꼭 편지가

오곤 하였다. 서울에 잘 도착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그 뒤로 우리

동네에는 거의 한 명의 총각도 남지 않았다. 그런 현상이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시골에 젊은이를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엊그제의 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떠나야만 했다.

 

아무리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반드시

서울로 가야한다는 것을 숙명처럼 여겼다. 나도 배바우를 떠나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나는 그 지방의 대처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는 환경이어서 대학부터 서울로 오긴 했지만

하여튼 배바우만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숙명으로 여겼다.

나는 어린 고2 시절이었을 때도 끈질기게 막내매부를 조르고

어머니를 설득하여 읍내로 이사를 하고야 말았으니 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의 원리가 바로 떠남의 원리였다. 자기가 창안해 낸 소프트웨어

MS-DOS가 가장 잘 나가고 있을 때 그는 MS-DOS의 패기를

선언한다. 가장 잘 나가고 있는 그 당시가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포착한

것이다. 이제 윈도우Windows 세상이 온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그는 과감히 MS-DOS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윈도우 3.1을

내놓고, 그것을 다시 패기하고 윈도우 2002, 2005, 펜티엄,

시스타Vista…를 내놓고 있다. 그의 계속된 떠남의 원리, 그것이 그의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사람은 부단히 자기의 보금자리를

박차고 떠날 줄 알아야 한다. 자리를 뜬다는 것은 안주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떠남은 더 좋은 세상을 갈망하는

인간욕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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