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오아시스와 신기루 / 변해명

윤소천 2023. 11. 27. 11:18

 

 

 

 

 

공항에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서둘러 떠나는 사람과 안도의 몸짓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이별하기 힘겨워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과 가족의

마중에 덥석 얼싸안고 피로를 지우는 사람들, 낯 선 이국에

맞아줄 사람을 기웃거리며 찾는 사람들…

맞고 보내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여행자가 되어본다.

 모두는 생각의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고,

새로운 떠남을 꿈꾸며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나도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출발을 서두르는 사람처럼

공연히 마음이 들뜬다.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여행자들은

모처럼 휴가를 만들어 쉴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세계에 접하고 싶고, 그 분야를 내 일상에

접목하고 싶어 도전을 안고 떠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은 이국의 풍물에 젖어보고 싶어 둥지를

잠시 벗어나는 기분으로 여행길에 오르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여행을 생각하면 더위를 식혀주는

휴양지나 바다가 아니라  황막한 사막, 오래 전에 다녀온 실크로드의

모래밭이 떠오른다. 그곳 생각을 하면 벌써 그 사막을 걸어가고

있는 나와 만난다. 내 여정은 자신과의 싸움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야 이룰 수 있는 힘든 여정을 꿈꾼다. 마치 무너져

내리려는 담장을 헐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리려는

힘든 작업처럼 나를 포기하고 나서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싶은,

그래서 모래사막으로 떠나보고 싶은 것이다.

 

지쳐있는 나를 더 지치게 하여 새로운 나로

탈바꿈하려는 의지 같기도 한, 진정한 휴식은 힘들고 거친 과정을

넘어서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것처럼. 그날, 5월의 사막은

우리의 한여름 날씨보다 뜨거웠다. 낙타를 타고 잠시 모래사막을

지나갈 때 영락없이 이스람교도처럼 눈만 남기고 모두를 감싸야 했다.

그 모래밭, 그 한 곳, 명사산 속에는 물방울만한 오아시스가 있었다.

달의 어금니 같다는 월아천月牙泉, 하늘에서 보면 지극히 작은 그릇에

 물을 담고 몇 그루 나무로 푸르름을 지니고 있는 점 같이

작은 신비의 영지, 명사산에 월아천은 사막 한가운데 그렇게 있었다.

그날 월아천을 바라볼 때 내 가슴은 뛰었다.

 

신비의 샘터를 향해 갈 때 나는 신들린 사람 같았다.

땅 밑으로 흐르는 강물,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혈관들처럼 땅 밑에는

많은 물들이 힘차게 흘러가고, 그 물이 솟구치는 곳,

그래서 푸르름을 키워내는 곳, 그곳으로 향하던 날은 신비한 푸르름의

향기에 와락 눈물이 솟기까지 했었다. 사막에 참새 눈물만한

오아시스. 모래 속에 묻히거나 강한 햇빛에 말라버릴 것 같은 그 작은

샘터가  수천 년을 견디어 오다니. 나는 신비의 영지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 그런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다시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때, 사막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신기루도 보았다.

그 놀라움은 월아천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차로 2시간을 달려도 그만큼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푸른 호수. 그 호수는 수평선을 그으며 사막 전부를

자신의 품에 쓸어 넣고 있었다. 그것이 신기루가 분명했지만 월아천보다

더 강렬한 유혹으로 나를 향해 손짓했다. 가도 가도 그 자리에

푸른 호수가 출렁이고 있는 신기루. 유혹이 강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그 힘에

밀려 그 속으로 빠져든다. 신기루의 흡인력은 태풍보다 더 강렬했다.

유혹은 욕망을 부채질한다. 어처구니없게도 허상의 호수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열망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나 홀로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는 나그네였다면 그 호수가 비록 신기루라 해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는 못하고 그곳을 향해 달려갈 것 같았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욕망의

바다가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사막에 펼쳐졌던 눈부시게 푸른

호수를 잊지 못한다. 신기루에 반해 사막을 헤매다 끝내

죽어간 나그네가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그들 속에 한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흔들림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사막보다 더 뜨겁고 메마른 도시가

 아닌가. 오아시스가 없는 도시는 숨 막히게 한다. 그 도시

도처에는 신기루가 손짓한다.

 

우리 삶속에는 오아시스가 있기에 사람들은 사막에 발을

드려놓는다. 모래밭을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아시스를 가기 위해

모래밭을 향한다. 옛사람들이 희망을 안고 거상을 꿈꾸며,

또는 진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막을 지나가야 했던 것처럼.

그러나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발걸음은 언제나 힘겹다.

그러기에 신기루의 손짓에 헛된 꿈을 꾸고, 유혹에 빠지고, 요행을

구하고, 도박을 하고 그러다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머리에 이고 다니는 탈출의

꿈을 털고 돌아오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기다리며 나는

여전히 떠나는 몸짓으로 서성인다. 누구나 자기자리로 돌아오면 떠나고

싶은 생각을 잊어버리지만 모든 것을 쏟아버린 빈 상자가

되고나면 다시 생각의 오아시스를 향해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