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삶의 맛 / 황동규

윤소천 2018. 1. 29. 19:51


삶의 맛




환절기, 사방 꽉 감기!

꼬박 보름 동안 잿빛 공기를 마시고 내뱉으며 살다가,

체온 38도 5분 언저리에서 식욕을 잃고

며칠 내 한밤중에 깨어 기침하고 콧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눈물샘 쥐어짜듯 눈물 흠뻑 쏟다가,

오늘 아침 문득

허파꽈리 속으로 스며드는 환한 봄 기척.


이젠 휘젓고 다닐 손바람도 없고

성긴 꽃다발 덮어주는 안개꽃 같은 모발도 없지만

오랜만에 나온 산책길, 개나리 노랗게 울타리 이루고

어디선가 생강나무 음성 들리는 듯

땅 위엔 제비꽃 솜나물이 심심잖게 피어있다.

좀 늦게 핀 매화 향기가 너무 좋아 그만

발을 헛디딘다.

신열가신 자리에 확 지펴지는 공복감, 이 환한 살아 있음!

봄에서 꽃을 찾을까, 징하게들 핀 꽃에서

봄을 뒤집어쓰지.

광폭(廣幅)으로 걷는다.

몇 발자국 앞서 뛰는 까치도 광폭으로 뛴다.

이 세상 뜰 때

제일로 잊지 말고 골라잡고 갈 삶의 맛은

무병(無病) 맛이 아니라 앓다가 낫는 맛?

앓지 않고 낫는 병이 혹

이 세상 어디엔가 계시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