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살구꽃과 한때 / 황동규

윤소천 2014. 6. 30. 06:42

 

 

살구꽃과 한때

 

 

 

 



마을 안에 차 집어넣고

이 집, 한 집 건너 저 집, 또 저 집,

구름처럼 피고 있는 살구꽃과 만난다.

빈집에는 작지만 분홍빛 더 실린 꽃구름,

때맞춰 깬 벌들이 이리저리 날고

날개맥(脈) 덜 여문 나비들이 저속으로 오간다.

소의 순한 얼굴이 너무 좋아

소 앞세우고 오는 마을 사람과 눈웃음으로 인사한다.

하늘 구름이 온통 동네에 내려와 있으니

말을 걸지 않아도 말이 되는군.

차에 올라 시동 걸고도 한참 동안 밖을 내다본다.

꽃들의 생애가 좀 짧으면 어때?

달포 뒤쯤 이곳을 다시 지날 때

이 꽃구름들 낡은 귀신들처럼 그냥 허옇게 매달려 있다면......

꽃도 황홀도 때맞춰 피고 지는 거다.


천천히 차를 몬다.

몸 돌려 보지 않아도

차 거울들 속에 꽃구름 피고 있고

차 거울로는 잘 잡히지 않으나

하늘의 연분홍을 땅 위에 내려 받는 검은 둥치들이

군소리 없이 구름을 잔뜩 인 채 서 있겠지.

차를 멈추고 뒤돌아본다.

아 하늘의 기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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