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후일담

[스크랩] 술은 인정이라 / 조지훈

윤소천 2016. 2. 16. 06:51

술은 인정이라    /   조지훈

                                                                                                                           


제 돈 써가면서 제 술 안 먹어 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 인정으로 주고 인정으로 받는 거라, 주고 받는 사람이 함께 인정에 희생이 된다. 흥으로 얘기하고 흥으로 듣기 때문에 얘기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흥 때문에 진위를 개의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흥에 취하는 것’이 오도(五道)의 자랑이거니와, 그 많은 인정 속에 술로 해서 잊지 못하는 인정 가화(佳話)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17,8년 전 얘기다. 친구 한 사람이 관철동에 주인을 정하고 있어서 통행 금지 시간이 없는 그 때에도 우리를 가끔 붙잡아 재워 주곤 했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몇 사람이 어울려 동아부인상회 맞은편 선술집으로부터 시작해서 '백수(白水)'니 '미도리'니 하는 우미관(優美館) 골목을 휩쓸고 내처 '백마(白馬)'니 '다이야몬드'니 하는 카페로 돌아다니며 밤 깊도록 마시고 나서 어찌된 셈인지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말았다.
 
대취한 나는 발걸음이 자연 관철동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 친구집 대문을 흔들고 들어가 그 친구가 쓰는 문간방에서 방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이건 어찌된 셈인가. 옆에 자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반백이 넘은 노인이었다. 방 안을 살펴보니 내가 노상 자곤 하던 친구의 방이 아니었다. 나는 쑥스럽고 놀랍고 해서 슬그머니 일어나 뺑소니를 치려던 참이었다. 늙은이라 나보다 먼저 잠이 깨어 있던 그는 완강히 나를 붙잡았다.

“여보 노형, 해장이나 하고 가야 피차 인사가 되지 않소?”

나는 그 때만 해도 아직 소심과 수줍음이 심할 때라 이 말 한 마디에 그만 취했을 때의 야성은 간 곳 없고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그 노인은 내가 앉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조금 뒤에 따끈하게 데운 술과 뜨거운 해장국 상을 앞에 놓고 이 노소(老少) 두 세대는 이내 담론이 풍발(風發)했다.
 
다시 술이 취한 뒤에사 알았거니와 내가 친구집인 줄 알고 문을 흔들 때 열어 준 사람도 자기였다는 것이다. 밤은 깊고 날은 몹시 추운데 낯모를 젊은이지만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혀 놓고 잠이 드는 내 꼴이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백발의 위의(威儀)에다가 무디지 않은 그의 인품이 엿보이는 이 노인은 자기도 젊었을 땐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따뜻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그가 장성한 아들을 꺾었다는 것도 알았다. 무척 애주가이기 때문에 젊은 술꾼인 나의 행장을 미소로써 들으며 흥겨워했다.
 
사실은 날 재운 것이 길가에 쓰러져 자다가 어떻게 될까 하는 어버이 같은 염려도 있었지만 해장술을 한번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나는 그분의 성함도 모른다. 그 노인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술을 아는 이만이 서로 알아주는 그것이 바로 따뜻한 정임을 이 일로써 깨달았다.

또 하나는 바로 1·4후퇴 때 일이다. 1월 3일 밤 여덟시에 마포를 건너 수원에서 자고 거기서 기차를 탄 것이 7일 아침에야 대구에 내렸었다. 그 동안 사흘 밤을 우리는 기차 안에서 잤거니와 이 이야기는 어느 작은 역을 이른 아침에 기차가 닿았을 때 일어난 이야기다.
 
지붕에까지 만원이 된 피난열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재빠른 사람들은 모두 내려와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느라고 부산하였다. 비꼬인 몸과 답답한 가슴을 풀어 보려고 비비면서 뛰어내려 나는 아주 희한히 반가운 일을 보았다. 어떤 여인이 플랫폼 한쪽 귀퉁이에 불을 피워 놓고 약주를 팔고 있지 않겠는가? 벌써 어떤 중년 신사가 한 잔 들이켜고 있었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그저 덮어놓고 한 사발 달래서 쭉 들이켰다(그 술맛의 쾌적했음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리라). 안주로 찌개도 숟갈도 들었다. 아무래도 미진해서 한 사발만 더 달랬더니 어쩐 일인지 술 파는 부인은 웃기만 하고 술도 대답도 주지를 않았다. 그 때 둘째 잔을 마시고 있던 중년 신사는 술잔을 놓고 유심히 눈웃음을 지으며, “선생도 술을 무던히 좋아하시는구려…… 목 마르신 것 같아서 한 잔 권했지만 이 술은 파는 게 아니요,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한두 잔씩 하려고 가져온 겁니다.” 하면서 술을 더 못 주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손수건을 꺼내어 입을 닦으면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글쎄 자기 피난 짐은 아무것도 꾸릴 필요가 없다면서 약주 여섯 병만 묶어 들고 나섰잖아요. 호호호.”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는 그 여인, 돈 안 받고 술을 팔던 그 여인은 물론 그 신사의 부인이었다.

술로써 오달(悟達)한 그 체관(諦觀)과 유유함이 이 혼란 중에 한층 의젓하고 멋이 있어서 부러웠다. 그는 기차가 이렇게 천천히 간다면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술이 모자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둘이 마주 쳐다보고 함께 웃었다.
 
그렇게 아끼는 술을 말없이 주는 인정, 이것이 술을 아는 마음이요 인생을 아는 마음이 아니냐. 파는 술인 줄 알고 당당히 손을 내민 내 행색은 지금도 고소(苦笑)를 불금(不禁)하거니와 낯모르는 사람에게 흔연히 한 잔 따라주던 그 부인도 인생의 진미를 체득한 것 같았다. 이것이 모두 술의 감화라고 생각하면 약간의 허물이 있다 해서 덮어놓고 술을 폄(貶)하는 폭력 의지는 아직 술을 모르는 탓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출처 : 정호경의 수필마을
글쓴이 : 이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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