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후일담

[스크랩] 설날을 기다리며 / 박동규

윤소천 2016. 2. 9. 11:26

설날을 기다리며   /  박동규



 낡은 생각 같지만, 인간의 생명이 지닌 의미는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이다. 이 살아 있음은 다름 아닌 인간만이 가진 따뜻한 사랑과 영원한 핏줄의 연대다. 이 연대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워 나갈 때 비로소 인간다움을 가지게 된다.

설날 차표를 예매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해마다 이 방송이 나오면 설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마치 자석에 끌리듯 고향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제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향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고향을 찾는 것은 부모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설날이 가까워지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머니와 삼촌이 계시던 경주 북쪽 건천이라는 곳을 갔다. 새벽에 서울에서 기차를 타면 한밤중이 되어서야 고향 마을에 내릴 수가 있었다. 지루한 기차 안에서 창문을 열면 석탄가루가 날아 들어와서 눈이 붉어질 때도 있었고, 어느 해에는 열차의 좌석이 없어서 의자 위에 매달린 선반에 올라가 누워서 간 적도 있었다. 나는 가끔 짜증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삼촌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였다. 그해도 서울에 살던 우리 가족은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갔다. 할머니는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고향 역 신호등 아래 서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가가자 나를 품에 껴안고 ‘아이고 내 새끼야’ 하고 우셨다. 할머니의 눈물이 내 볼을 적실 때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물이 났다. 이 ‘내 새끼’라는 말이 가슴에 얼음 칼처럼 섬뜩하게 꽂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온 혈연의 끈이 갑자기 내 가슴을 죄어오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느낌은 알 수 없는 눈물이 되었다.

어찌 보면 부모가 자식을 키워오는 동안 ‘내 새끼’라는 극히 동물적인 용어 하나에 매달려 있는 듯 보인다. 하근찬의 오래된 소설 ‘수난 이대’를 보면 부자의 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일제 시절 산골에 살던 농부가 징용에 끌려가 팔 한쪽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 손으로 호미를 들고 농사를 지으며 아들이 장성하여 이 집을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6·25가 터지고 아들은 군문에 입대하여 전선으로 가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휴전이 됐다는 소문이 돈 얼마 후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제대해서 며칟날 고향 역에 내린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장에 가서, 돌아오는 아들을 주려고 간고등어 한 접을 사서 새끼줄에 매달고 역으로 갔다. 드디어 기차가 도착하고 아들이 다가왔다. 아들은 다리 한쪽을 잃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이 비극의 부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마침내 아버지와 아들은 동네 앞 큰 개천의 외나무다리에 닿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다리 한쪽이 없음을 생각하고 쪼그려 앉아서 아들에게 “너는 다리 한쪽이 없고 나는 한 팔이 없으니 너는 이 고등어를 들고 등에 업혀라. 나는 다리가 둘이니 너를 업고 건널게”라고 했다. 아들을 업고 다리 위에 서서 농부는 아들에게 “그래 내가 너의 다리가 되고 네가 내 팔이 되면 우리 살아갈 수 있지 않니” 하고 말했다.

대학 때 읽은 이 소설에서, 농부가 다리 위에서 한 이 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말 속에는 ‘내 새끼’를 뛰어넘는 깊은 감명이 있다. 이 감명은 서로를 생명의 공동 동반자로 여기는 아버지의 생각이다. 단순히 핏줄이 같다는 것에 머무는 게 부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삶의 보완적 관계를 통해 변함없는 동질의 삶을 함께해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실에서 공부만 하며 내일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밤늦게 연구실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아버지가 대문 앞에 서 계셨다. 내가 다가가자 뭔가를 내 손에 쥐여주면서 “이걸로 점심이라도 제대로 사 먹어. 열심히 하는데 잘 되겠지” 하시며 어깨를 감싸 안아주셨다. 동생들 앞에서 다섯 형제의 맏아들인 나한테만 용돈을 주실 수 없어서 대문 앞에서 기다리신 것이었다.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 아버지’라는 가슴 가득한 행복감이 나를 떨게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내가 사십 대 초반 열병에 걸려 십여 일을 생사의 갈림에서 투병할 때 새벽부터 한밤까지 내 손을 잡고 마치 함께 앓듯이 눈물로 기도하셨다. 나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어머니의 잔잔한 기도 소리를 들으며 가슴속에서 절로 울려오는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신문마다 실린 부모와 자식 간의 패륜적 기사에 겁이 난다. 가정의 기틀이 올바로 잡혀야 온전한 삶을 이뤄갈 수 있다. 부모는 바로 이 온전함의 중심이며 인간다움의 표상이 돼야 한다. 막연한 ‘새끼’ 개념만으로 한 가정을 이뤄 갈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설날 고향으로 가는 차표를 사서 즐거운 것은 부모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애틋한 마음에서 피어난 사랑의 향기가 인간다운 아름다운 삶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추운 강가에 피어난 갈대들이 서로 어울려 몸을 비비고 엉켜 하나가 돼 사는 것은 그들이 하나의 터전에 사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서로 위안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갈대가 되는 것임을 갈대는 아는 것이다.




박동규 /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