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혁
나의 본적은 하늘 아래 허공
내가 구름의 아들이라는 것은 잘 아실 테고요
나는 까마득한 지상을 그리워하며 살았지요
도대체 막막한 떠돌이 삶은 싫어
지상의 가장 안전한 정착지를 찾아서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우리 집 가훈
누가 나더러 물이라고 빈정대고 얕잡아도 나는
그냥 웃었지요, 사실 보시다시피 나는 물이니까요
행로를 가로막는 장벽도 수없이 만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적하지 않고
죽은 듯 먼 길 돌아서 갔지요
까마득한 낭떠러지도 새처럼 뛰어 내리고
우리 집 가훈 ‘겸손한 마음으로’
모난 돌들의 상처도 어루만지며
목마른 나무들의 목을 적셔주며 살아왔지요
아 그러나 물이라고 내 성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은 아니어서
때로는 천둥 벼락을 동반, 큰물이 되어 세상의
썩어가는 오물을 쓸어내릴 때
혁명은 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한숨과 눈물을 짜내기도 하였지만 그건
내 본의가 아니었다는 걸 믿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건 전혀 광풍 때문이었다는 걸 말하진 않겠습니다
아, 저 강기슭에 삽을 씻는 농부가 보이는군요
바로 저길 휘돌아가면 드디어 강의 아랫목
나의 긴 이력을 다 쓰고 한 판 살아갈 안식처
나의 본향은 하늘 아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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