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다시 밝은 날에 / 서정주

윤소천 2014. 11. 12. 09:28

 

다시 밝은 날에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낙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이

당신은 다시 그를 데려가고

그 훠-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노을을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기인 밤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 번 내 위에 밝은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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