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가을에 / 서정주

윤소천 2014. 11. 11. 09:03

 

 

가을에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속(低俗)에 항거(抗拒)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雁行) -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

국화(菊花)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白露)는 상강(霜降)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楊貴妃)의 피비린내 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開闢)은 또 한 번 뒷문(門)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 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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