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윤소천 2014. 9. 17. 06:40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으르르 으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에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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