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은 소나무를 좋아했고, 고목의 느티나무를
좋아했으며 나이든 묵은 감나무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양버들이 마음에 들어앉기 시작했다. 바람 부는 대로
순응하고, 머리를 드는 것이 아니라 땅에 고개를 숙이고 얼어붙은
대지가 녹으면 봄을 먼저 알린다. 강한 바람에도 풀어지지
않는 자세가 좋다. 한때는 풍전세류라고도 하고 노류장화라고도
하면서 지조 없는 것의 상징으로 비유했다. 교육자이시던
시아버님도 학교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유인즉, 올라가다 쳐져 버려 기상이 없다고 해서이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행여 버들이 될까 봐 싫어했다.
그런 내게 대학 교정에 그늘을 드리운 채 사색에 잠긴 듯 서
있는 ㅜ수양버들이 노학자의 겸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고하고 위풍이 있어 보인 것이다. 대학가의
버드나무는 노자의 모습이다.
강한 바람에도 풀어지지 않고 흩어짐 없이 바람결 따라
움직이되 자신의 모습을 지켜낸다. 조급하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는 법이 없다. 온화하고 과묵하며,
속으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버들이 줏대 없는 풍전세류라는
평을 듣는다. 실실이 푸르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순하고 약하다. 꺾으면 꺾일 듯이 낭창거린
그 버들이 손쉽게 잡혀서였을까.
‘노화장류’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 지난 날 기생의 대명사가
됐던 나무. 하지만 기생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망실하고
깊고 넓은 마음으로 남자를 감쌀 줄아는 기생. 일편단심으로
한 사람만 섬기던 옛 기생들은 겉으론 평범하지만 속으로는 지조가 강한
여인이었다. 미풍에 실가지를 흔드는 버들은 어떤 태풍에도 꺾이는
일이 없다. 전신주가 넘어가고 다른 강한 나무는 뿌리조차 뽑혀져 무너진다.
버들은 고개는 숙이지 뿌리는 안 움직인다. 입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런 버드나무를 노류장화로 만만히 본다. 동짓달
엄동설한에 다른 나무는 잎을 다 떨궜는데, 버드나무만 잎이
푸른 채 서 있다. 눈이 내려 모든 나무들은 빈 가지에
눈을 덮은 채 서 있는데 버드나무는 눈마저도 털어버리고
하늘하늘 서 있다. 그 모습이 소유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보다 주어서 가슴을 채우는 모습이다. 마치 도인을 보는 듯하다.
수양버들을 보면,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맞는다며 똑
부러지게 흑백론으로 단정하지 않은 황희 정승이 떠오른다. 모든
사물에는 우열이 없다. 각각의 삶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인생에 있어서 정답이 무엇인가. 이것도 맞고, 저것도 옳다고
유연성 있게 대처하는 버드나무와 같은 삶은 어떠할지.
살아간다는 것은 부딪히는 일 하나 하나를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사는 게 아니겠는가. 수양버들 속에 그런 진리를 모르고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 살아간다.
노자는 말하였다. 도의 작용은 부드럽고 약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순한 비, 부드러운 바람이 자연스런 도의 작용이다.
회오리바람, 사나운 소낙비와 같은 부자연한 것은 하늘의
본연의 상태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약하면 손해 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강하면 부러진다는 것을 잊으며 살아간다.
물은 부드럽고 강하기 때문에 도에 가깝다고 했다.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듯이 이렇게 부드럽고 약한 것이
도의 작용하는 본연의 모습이며 정치도 형벌이나 위력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이 그 길이라고 한다. 나는 유약한 수양버들
나무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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