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존재의 신비 / 구 상

윤소천 2023. 9. 30. 20:51

 

 

 

 

아파트 살이 내 서재 창가에는 몇 안 되는 화분에 끼여 잡초의

화반花盤이 하나 놓여 있다. 저 이름 모를 들풀들은 지지난 해, 봄 국화가

진자리에 제풀에 싹을 터서 제김에 자라 스러지고 나고 하며,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때마다 풀들이 이것저것 바뀌는 것으로 보아서는, 제 자리

흙에서 묻어온 것도 있지만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 온 씨앗도 더러

트는 성 싶다. 나는 난초보다도 또 어느 화분보다도 이 화분을 아끼는데,

저 잡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고향의 들길이나 산기슭이나

바닷가를 거니는 느낌이어서, 한동안이나마 자신이나 세상살이의 번잡에서

해방되며 또 그 조그맣고 가녀린 꽃들을 바라볼 때는 그야말로

‘솔로몬의 영화榮華’ 보다도 소중하고 진실하고 아름답다는 실감을 지닌다.

 

더욱이나 저 무명초無名草들이 서울에서도 여의도, 콘크리트 숲속

이 닭장 같은 아파트 4층에 기생寄生하기까지의 사연을 떠올려 나가 보노라면,

내가 이곳에 기류寄留하기까지의 삶의 허구 많은 곡절과 매한가지려니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며, 그 들풀들이나 나의, 똑같은 존재의 신비에 놀라게

되고 또 그것들과 나와의 만남의 신비에 일종의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실상 조금만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우리의 삶의 둘레를 살펴보면 존재, 즉

사물事物과 사상事象과 사리事理들이 신비스럽지 않은 게 없다.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있는 것도, 새들이 날며 지저귀는 것도, 땅에 산천초목이

우거지고 짐승들이 깃들며 바다에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는 것도,

아니 그 중에도 우리 인간들이 삶의 보람을 찾으며 산다는 사실에도 새삼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바가 없다.

 

어디 그뿐인가 ! 제 몸에 지니고 있는 이목구비와 사지수족四肢手足

하나 하나도 얼마나 놀라움인가 ?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그 관절이 셋이

있어 자유롭게 쥐고 펼 수 있다는 사실도 그 얼마나 감격인가 ?

흔히들 사람은 이 손에다 많은 돈을 쥐려고 하고 또 값비싼 보석을

장식하려고만 생각하지만, 실은 그 손에 쥐어지는 돈이나 보석보다 그것을

쥐는 손의 소중함이나 감사함을 모른다. 즉 이 손이 붓을 잡아야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 손이 바늘을 잡아야 재봉을 하고, 이 손이

도마와 칼을 잡아야 요리를 만들고, 이 손이 괭이와 삽을 잡아야 야채와

곡식을 거두고, 이 손이 망치와 톱을 쥐어야 집과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신비성에 대한 경이驚異와 감복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표현한 나의 시 하나를 소개하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 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한 우주, 허막虛漠의 바다에

모래알 보다 작은 내가

말씀의 신성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 말씀의 실상> 전문

 

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이제 회귀回歸에 든 연륜과 존재의

비의秘義에 눈떠가는 표백일 뿐이지만, 실상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금만

마음을 순수하게하고, 즉 탐욕에서 벗어나면 온통 이 세계가 신비 속에,

그 신령한 힘에 감싸여 있음을 알고 느낄 수가 있다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여의도 어떤 종교 집회 때 공중에 십자가가 나타났다고

야단들이고, 또 기독교 각 교파들을 비롯해 각 종교단체들이

이적異蹟을 행하고 또 그것을 체험하려고 열을 올리지만, 또 그것을

비난할 바는 못 되지만, 오직 그것이 청순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지

감각적 욕구에 치우쳐 있다면, 역시 그것은 오늘의 물질주의와

더불은 현상이라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나사렛 예수’가 친히 말하듯

‘마음이 청순한 사람’은 만물과 그 일체 현상에서 이적보다도 더욱

확연히 하느님과 그 신령한 힘을 넉넉히 보고도 남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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