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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 윤소천

며칠 전 남쪽 바닷가에 사는 친지로부터 매화가 피었다는 봄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곳은 춘설春雪이 밤새 내렸다. 뜰에 나가 보니 잔설이 쌓여있는 산수유 매화의 꽃눈이 또렷해져 겨울잠에서깨어나고 있었다. 사유思惟에 눈뜨던 시졀, 무서리에 자지러진 가을을 지나 눈 내린 혹한의 겨울 그리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유년의 기억마저 잊게 했다. 그러나 그 고뇌와 아픔의 시간 들이 이제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작은 구름이 가볍게 하늘을 흘러간다 /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꽃은 풀숲에서 웃는다 /어디를 보아도 고단한 눈은 이제 /책에서 읽은 것을 잊으려 한다 / 내가 읽었던 어려운 것들은 / 모두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으며 / 겨울날의 환상에 불과했다 / 나의 눈은 깨끗하게 정화되어 / 새로..

수선화 水仙花 / 윤소천

봄나들이 길에 순창 김인후 선생의훈몽재訓蒙齋를 찾았다가 옆 농원에서 귀한수선화 몇 분을 얻어왔다. 금잔옥대金盞玉臺라하는 거문도巨文島수선화로 내가 좋아하는수선화다. 뜰 군데군데에 심었는데 어느새 무리를지어 피어있다. 금잔옥대는 여섯 개의 하얀꽃잎 안에 황금빛 꽃송이가 꽃 잔처럼 오똑 서있고 향기가 있는 기품있는 수선화다.하얀 꽃받침에 작은 금빛 꽃송이가 종 모양같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날 것 같다.​수선화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도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해 씨를 맺지 못한다.꽃이 지고 봄이 지나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고, 한해 내내 땅속에서 동면하며 뿌리를 키워 번식한다. 그리고 이듬해 수선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수선화를 상징하는 꽃말은 자존심과 자기애 그리고 외로움과 고결이다.​수선화는 ..

소천의 수필 2024.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