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무소부재(無所不在) / 구 상

윤소천 2024. 6. 10. 17:13

 

 

 

아지랑이 낀 연당(蓮塘)에

꿈나무 살포시 내려앉듯

그 고요로 계십니까.

 

비 나리는 무주공산(無主空山)

어둑이 진 유수(幽遂) 속에

심오하게 계십니까.

 

산사(山寺) 뜰 파초(芭草) 그늘에

한 포기 채송화모양

애련(哀憐)스레 계십니까.

 

휘엉청 걸린 달 아래

장독대가 지은 그림자이듯

쓸쓸하게 계십니까.

 

청산(靑山)이 연장(連嶂)하여

병풍처럼 둘렀는데

높이 솟은 설봉(雪峰)인 듯

어느 절정에 계십니까.

 

일월(日月)을 조응(照應)하여

세월없이 흐르는 장강(長江)이듯

유연(悠然)하게 계십니까.

 

상강(霜降) 아침

나목(裸木) 가지에 펼쳐있는

청열(淸烈) 안에 계십니까.

 

석양이 비낀

황금 들판에 넘실거리는

풍요 속에 계십니까.

 

삼동(三冬)에 뒤져놓은

번열(煩熱) 식은 대지같이

태초의 침묵을 안고 계십니까.

 

허허창창(虛虛蒼蒼)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무애(無涯)도 넘어

아득히 계십니까.

 

칠색(七色)의 무지개 위에

성좌(星座)를 보석자리 삼아

동천(東天)의 일출(日出)마냥

휘황스레 계십니까.

 

이화(李花),도화(桃花) 방창(芳暢)한데

지저귀는 저 새들과

옥류(玉流)에서 노니는 고기떼들의

생래(生來)의 즐거움으로 계십니까.

 

풀잎 뜯어 새김하며

먼 산 한번 구름 한 번 바라보는

산양(山羊)의 무심으로 계십니까.

 

저고리 섶을 연 젖무덤에 안겨서

어미를 쳐다보는 아기의 눈빛 같은

무염(無染) 속에 계십니까.

 

저 신선도(神仙圖)

흰 수염 드리운 그윽한 미소로

굽어 살피고 계십니까.

 

이렇듯 형상으론 섬기지 못하고

붓 안 닿는 여백같이

시공(時空)을 채워 계심이여!

 

무소부재(無所不在),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천주(天主)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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