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눈 깨 비
식을 대로 식어버린 그대 입술의
마지막 돌아서던 그 키스에
이승에서 다시 안 볼 사람 앞
맵고 짜던 그 눈총 속에
어쩌면 얌전하디얌전하게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진눈깨비 한 마장.
용캐도 안 잊어먹고
하늘의 그 어드메 산수갑산쯤에서
들키지 않게 숨어 있다가
오늘에사 나를 찾아오시는
이 시늉, 이 매질들인가.
누구의 선 귀때기나 울려주려고
누구의 슬픔에 뿌리를 달아주려고
느지막이 이 투정, 이 안달들인가.
그러나 이제는
적셔도 젖지 않을 눈물,
울려도 울지 않을 나의 삼경(三更).
서리무지개 서서
줄기줄기 무리져서
이승에서 다시 안 볼 사람 앞
매질하며 달려오시는 그대.
고꾸라지며 맨발 벗고 내게 오시는 그대.
( 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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