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진눈깨비 / 나태주

윤소천 2020. 12. 27. 11:37


진 눈 깨 비

 

 


식을 대로 식어버린 그대 입술의

마지막 돌아서던 그 키스에

이승에서 다시 안 볼 사람 앞

맵고 짜던 그 눈총 속에

어쩌면 얌전하디얌전하게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진눈깨비 한 마장.

 

용캐도 안 잊어먹고

하늘의 그 어드메 산수갑산쯤에서

들키지 않게 숨어 있다가

오늘에사 나를 찾아오시는

이 시늉, 이 매질들인가.

 

누구의 선 귀때기나 울려주려고

누구의 슬픔에 뿌리를 달아주려고

느지막이 이 투정, 이 안달들인가.

그러나 이제는

적셔도 젖지 않을 눈물,

울려도 울지 않을 나의 삼경(三更).

 

서리무지개 서서

줄기줄기 무리져서

이승에서 다시 안 볼 사람 앞

매질하며 달려오시는 그대.

고꾸라지며 맨발 벗고 내게 오시는 그대.

 

( 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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