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돌 확/ 손광성

윤소천 2014. 6. 6. 08:19

 

 

 우리 집 마당에는 물을 담아 두는 돌확이 셋이 있다.

하나는 이집으로 이사 올 때 전 주인에게서 헐값에 물려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동에서 서너 해 전에 쌀 두 가마 값을 주고

사온 것이다. 타원형에 손잡이까지 달려 있다. 크기도 긴 쪽이 어른

한 발은 좋이 된다. 오랜 풍상으로 모난 데 없고 청태마저

 파란 것이 고색이 창연하다. 뜰이 좁아 연못을 가질 형편이 못 되는

나에게 이 돌확은 연못 구실을 한다. 맑은 샘물을 길어다 붓고

가끔씩 가서 수기(水氣)를 쐬기도 하고, 아니면 부평초를 띄워 두거나

수련 몇 포기를 심어 두고 그 윤기 나는 잎이며 청초한 꽃을

즐기기도 한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손수 파낸 것이다. 크기는

앞엣 것들보다 작은 편이지만 펑퍼짐한 강돌을 옮겨다 정으로

쪼아 낸 것이어서 야취(野趣)가 그만이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녔지만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닌 것이 있다면, 몇 권 안 되는 내 책들과 이민 간 친구가 물려준

늙은 진달래 한 그루와 그리고 이 돌확인가 한다. 장정 둘이 덤벼도

겨우 옮기는 이 돌덩이를 끌고 다니면서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내가 손수 만든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내게 베푸는 혜택이 적지 않아서였다고 생각된다.

봄이면 꽃 그림자도 곱게 비춰 주고, 여름이면 메마른 뜰에 서늘한

수기도 뿜어 준다. 옆에 가 앉으면 더위도 한 발 물러서는 듯,

때로는 지나가던 구름도 쉬어서 간다. 둘레에 언제나 하얗게

똥이 떨어져 있는 것도 밉지 않다. 이 동네 새들이

목을 축이고 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 주인이 찾아가 버렸지만, 잠시 길을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살다 간 적이 있었는데, 녀석도 제 밥그릇에 담긴 물보다

돌확에 담긴 물을 웬일인지 더 좋아했다. 잠이 오지 않는 날 밤,

뜰 안을 서성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돌확에 와서 걸터앉게

된다. 들여다보면 구리거울처럼 잔잔한 물, 그 속에 초롱초롱

별들이 잠겨 있다. 때로는 하현달도 기웃거린다.  날 밤은 이 돌확

속도 그저 캄캄하기만 한 것이다. 이런 날 밤은 어쩐지

마음도 공연히 어두위지는 것만 같다.

 

 오래 전 일이지만 우리 외가에도 이만한 돌확이 하나 있었다.

작은 샘가였는데 외조부께서는 차를 달이시거나 글을 쓰시기 전에

이 돌확에서 손을 씻으시곤 하셨다. 바닥에 깔아 놓은 하얀 조약돌

때문이었을까. 그 속에 담긴 물은 언제 보아도 맑고 투명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세월 모르던 나의 검게 탄 얼굴이 거기

들어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돌확 속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들어 있다. 늙어 가는 얼굴이다. 전쟁과 이별과 그리고 온갖 고통이

남겨 놓고 간 생활의 상흔들. 이마에는 고랑이 깊이 패이고

탄력을 잃은 피부에는 병색이 짙다.

 

 하지만, 수척한 내 얼굴에는 욕심이랄 것이 없다.

헛된 이름을 위해 분칠한 적이 없고, 남의 비위를 위해 비굴한

웃음을 팔아 본 흔적이 없다. 그저 카랑카랑 늙어가는 얼굴이다.

이왕이면 나도 곱게 늙어 가는 얼굴이었으면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욕심도 없다. 오늘이 우수. 이제 봄이

멀지 않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돌확에서 얼음을 따 내야겠다.

그리고 거기에 맑은 샘물을 길어다 부어야겠다. 겨우내 목이

말랐을 이 마을 새들이 목을 축이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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