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소녀를 전경(前景)으로 놓고 상반신을 그린 이 작품은 뭔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고 있는 듯한
귀여운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유화의 윗부분은 화려한 꽃들로 가득하여 눈부시다. 르노와르는
소녀와 꽃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하나로 구도(構圖)하고 있다. 소녀나 꽃이 지니는 속성(屬性),
즉 아름답고 밝은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나름의 화사한 색감을 십분 강조할 수 있는 좋은
화재(畵材)가 아닐 수 없다. 딴은 이 두 소재란 르노와르를 지탱해 주는 주요한 것인데,
후기에는 이 두 주제가 제각기 독립하여 르노와르 예술로서 성숙해 갔다. 소녀와 꽃을 잇는 곳에
그려진 부채는 구도상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소녀의 둥근 얼굴과 둥근 부채가 짝지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산을 든 리즈
르노와르가 스물 여섯 살 되던 해의 작품으로서, 이 해는 인상파 그룹이 모이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당시의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들라크로아, 쿠르베 등의 영향을 두드러지게 느끼게 하는,
이른바 르노와르가 화가로서의 발전의 출발점을 보이는 작품이다. 호외(戶外)의 볕살 속에 인물을
세워 놓고 그리는 이와 같은 그림은 당시의 젊은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다. 같은 해에 모네는
그의 연인(戀人) 까게유를 모델로 해서 <마당의 여인>을 그렸는데, 이에 뒤질세라 르노와르도 리즈를
샤이 안 삐엘의 여름 숲으로 데리고 나와 이 회화를 완성한 것이다. 그녀의 흰옷에 햇빛을
담뿍 싣고 있으며, 한 손에든 양산 색채가 약간 어두운 배경 위에 부조(浮彫)된 품이라든가,
모델의 자연스런 일상적인 포즈 등이 퍽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