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까 치 / 윤오영

윤소천 2015. 2. 16. 09:11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 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音程)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 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이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 효조(孝鳥)라

일러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 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 해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 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까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나는 항상 이담에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었다.

 

내가 완자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에서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 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이지 집이 아니다.

다른 새 집은 새 보금자리, 새 둥지, 이런 말을 쓰면서 오직 제비집

까치집만 집이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를 알 수가 있다. 한국 건축의 정서를 알려는 건축가들은 한 번

생각해 봄 직한 문제인 듯하다. 요새 고층건물, 특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을

보면 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장'이지 '집'은 아니다.

 

지금은 아침 여덟 시, 나는 정릉 안 숲 속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오래간만에 까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들은 아침 햇빛을 받아 유난히

곱게 프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맑다. 그간

비가 많이 왔던 관계로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 온다. 나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여길 와 본 적이 있었다. 보건 운동을 하러 온 사람, 약물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윽한 숲 속이 한없이 고요하다.

지금이 제일 고요한 시간이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이른바 까치 걸음이다. 귀엽다.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이 옆에 앉아 있다는 데는 아무 관심이나 의구심도 없이 내 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다. 나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민화(民畵) 하나를 생각한다.

한 노옹(老翁)이 나무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을 자는데, 그 배위에

까치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나는 신기한 그 상상화에 기쁨을 느꼈다. 민화란

어린아이와 자유화(自由畵) 같이 천진하고 기발한 데가 있어서 저런

재미있는 그림도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 보고 있는 것은

기발(奇拔)한 상상이 이니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이지봉(李芝峯)이 정호음(鄭湖陰)의 "산과 물이 바람에

소릴 치며, 강물은 거세게 울먹이는데, 달은 외로이 비쳐 있다."는 시를

보고 '강물이 거세게 이는데 달이 외롭게'란 실경(實景)에 맞지

않는다고 폄(貶)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고요히 밝은 밤중에는 물결이

잔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김백곡(金栢谷)이 황강역(黃江驛)에서

자다가 여울 소리가 하도 거세기에 문을 열고 보니 달이 외롭게 걸려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그 구(句)가 실경을 그린 명구(名句)인 것을 알았다는

시화(詩話)가 있다. 나도 그 민화가 실경인 것은 모르고 가상(寄想)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의 민화 한 폭이 다시금

눈 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누워서 잠자는

노옹(老翁), 그 배 위에 서 있는 까치 한 마리.

 

이지봉(李芝峯) 조선 선조 때의 실학자, 지봉유설(芝峯類設)의 이수광

정호음(鄭湖飮) 조선 성종-선조 때의 문신 정사룡(鄭士龍)

김백곡(金栢谷) 조선 선조-숙종 때의 시인 김득신(金得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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