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으로 청첩장이 하나 도착했다.
신랑 이름이 안도현이었다.어째 이런 일이!
나하고 이름이 똑같은 신랑은 시를 쓰는 후배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는 나중에 하는 수 없이
필명을 안찬수로 바꾸었다. 선배를 잘못 둔 덕분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문학청년 시절에 만났던 몇 사람도
이름을 바꾸었다. 시인 이상백은 이산하가 되었고,
시인으로 등단했던 김정숙은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김형경이
되었다. 류시화 시인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이름은 안재찬이었다. 창원의 경남대를 갔을 때 소설가
전경린은 없었다. 연구실 문패는 안애금이었다.
아예 성까지 바꿔 필명을 만든 경우는 30낸대의
이상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의 본명을 김해경이었다. 강하고 뻣센
느낌의 조동탁보다 조지훈이란 필명이 훨씬 훈훈하고
우리에게 친숙하다. 현역 작가 중에도 필명이
본명보다 더 알려진 문인이 적지 안다. 고은은
고은태였고, 심경림은 신응식이었고 황석영은 황수영이었고
황지우는 황재우였고, 박노해는 박기평이었다.
젊은 소설가 김사인의 본명은 김방실이었다.
백석은 어릴 적에 백기행이었다. 1933년 12월, 방응모
장학금을 받은 장학생들이 회보를 냈는데
그 표지에는 ‘백석(白奭)으로 실려 있다. 백석이
만주에서 ‘한얼생’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는 일부 주장이 있다. 이건
터무니 없는 억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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