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후일담

[스크랩]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윤소천 2015. 9. 8. 21:51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나는 그 순간 운명을 안아버린 것이다. 내가 운명을 받아 안았으므로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있던 순간, 젓가락을 놓치면서 신달자의 남편은 옆으로 쓰러졌다.

신달자는 그 순간 남편의 운명을 떠안아 버렸다. 그녀의 남편은 전도유망한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쓰러지는 남편과 함께 받아들인 운명은 잔인하게 24년간 그녀를 괴롭혔고 그녀의 남편은 2000년 10월에 마지막 잠이 들었다. 시인 신달자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그녀가 남편을 보내고 몇 년 후,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동안의 삶과 회한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신달자의 남편은 뇌졸중으로 쓰러지던 날부터 23일 만에 눈을 떴다. 그동안의 미안함을 뒤로하고 훌훌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던 그녀의 남편은 더디게 회복되었다. 그의 왼쪽 몸은 마비되었다. 당시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명의 딸을 키우고 있었다. 막내는 세살이었으며 그녀의 나이는 서른다섯이었다.


집으로 퇴원한 후에도 그녀의 남편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여 자살소동으로 정신병원 생활도 하고, 미친 듯이 웃어대는 희귀병을 앓기도 하였다. 아내에 대한 폭력도 잦았다.

남편의 간병에 모든 체력과 정성을 쏟아 넣고 있었던 시기에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가능성을 보고 무한한 정성을 쏟았었다. 결혼 후 만신창이가 된 작가를 내내 바라보기만 하던 그녀의 어머니였다. 신달자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용돈 한번 드리지 못했다는 무참함에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얼마 후에는 시어머니도 허리를 다쳐 꼬박 9년을 꼼짝 못하고 자리에만 누웠다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 간호도 신달자의 몫이었다. 시련을 겪는 고비마다 그녀는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야말로 ‘살이 타고 뼈가 녹아 쇳물같이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러기를 24년, 작가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운명은 그녀를 놓아 주었다.


 신달자가 대학교에 구걸하다시피 하여 다시 교수직을 받은 남편은 월급을 받아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녀는 생계를 위하여 옷감을 파는 보따리 장사를 시작하였다.

보따리를 안고 찾아간 친척집에서 멸시를 당하고 그것마저 그만둔다. 그녀는 하루 동안의 간절한 단식기도를 통해 먹고 살 방도를 찾으려 했다.


그녀의 결정은 나이 40에 다시 공부를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같은 보따리를 들고 다니지만 이제 지식을 파는 강사가 되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남편이 주는 몇 푼의 돈으로 두부와 콩나물을 사면서 대책없이 아이만 낳고 살았던’ 그녀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원수같은 남편을 묻고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와 보냈던 세월이 좋았다고 신달자는 회상한다.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간단한 이야기도 당시에는 좋은 줄 모르고 지냈다고.

 “여보, 비 오네.”

 “또 비가 오네, 장만가 봐.”

지금은 혼잣말로 ‘비가 오네, 눈이 오네, 바람이 부네’ 하고 있으면 그가 그리워진다고 한다.

얼마 전 그녀는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직접 본인이 수술과 치료를 받아보니 그리도 자기를 못 살게 굴었던 남편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달자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참으로 솔직하게 쓰인 책이다. 남편의 폭력은 누구라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얘기지만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글 어디에도 고고(呱呱)한 시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저자는 환자를 보살피는 동안 헛돈을 쓰는 일이 많으니 경계하라는 실용적인 충고도 잊지 않았다.


 시련 앞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에서 그녀는 ‘자존심’때문 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애들과 시어머니를 두고 결코 쓰러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배우자를 살리려고, 나아가서 정상인과 같은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실제로 남들 보기에 그녀의 남편은 거의 정상인에 도달하였다.


나는 저자의 말처럼 ‘그녀의 자존심’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인 신달자의 내면에 깔린 인간에 대한 애정, 생명에 대한 경외(敬畏), 거부 할 수 없는 양심이 남편을 살려내고, 시어머니를 간병하고, 생존을 위하여 40세에 다시 학교를 다니게 만들었다.


그녀는 병에 대해서 무지(無知)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산적이지 못했다. 신달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호하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딸을 길러야 한다는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 하루들이 모여서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냈다. 행동 후 내일의 피곤함이나 곤궁함을 생각지 않고 행동의 본질만 생각하는 선한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 있다. 시인 신달자가 그런 이웃이고 그녀를 통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본다


* 신달자(愼達子, 1943년~ )은 대한민국시인이다. 경남 거창에서 출생하였다.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2년 《현대문학》에 〈발〉,〈처음 목소리〉가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봉헌문자》,《겨울축제》,《모순의 방》,《아가》, 산문집으로 《백치애인》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으며,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