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도 시를 쓰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제 경우엔 시 청탁을 받았을 때
가장 쓰기 싫어집니다. 그것도 축시나 기념시를 청탁받았을 땐 더
쓰기 싫어집니다. 그리고 시를 쓸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는데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았을 땐 더더욱 싫어집니다. 문예지에서 시인에게 시를
청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시인은 시를 청탁받는 일이 가장 영광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청탁해 주는 편집자가 고마워 시를 쓰겠다고 말해 버리고 나면 그 순간부터
시가 쓰기 싫어져 몸부림을 칩니다. 어디 멀리 도망갈 데가 있으면
도망가 버리고 싶어집니다. 시에 대해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인데 청탁을 수락했다고 해서 시가 써질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청탁을 받기 전에 미리 시를 써 놓으려고 노력합니다.
쓰고 싶을 때 그 누구의 독촉이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스스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할 때도 시 쓰기가
힘들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속으로 ‘난 시 쓰는 기계가 아니야,
난 짜면 시가 나오는 치약이 아니야, 틀기만 하면 나오는 수도꼭지가
아니란 말이야!’하고 소리치면서 자괴감에 빠진 제 자신을 위로합니다.
요즘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열심히 시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가슴이 막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시 쓰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아예 포기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고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1968년 대학 1학년 시절을 회상하곤 합니다.
그때 서울 전농동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말이 자취지 잠만 월세방에서 자고
밥은 대부분 밖에서 사 먹었습니다. 그 때 제일 싸고 배불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유부국수였는데, 유부국수 한 그릇 값이 30원 이었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 주시는 돈이 한 달에 5000원 이어서 그 돈에서
방값 반을 제하고 나면 하루 100원 이상 쓰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일주일
정도는 유부국수조차 사 먹을 돈이 없어 쩔쩔맸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침 사 먹을 돈으로 학교 근처‘궁다방’에 가서 모닝커피를
사 먹었습니다. 모닝커피엔 노른자가 동동 뜬 날계란 하나를 넣어 주었는데
그것이 저의 아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방에 앉아 하루 종일 시를 썼습니다.
당시 커피 한 잔 값과 유부국수 한 그릇 값이 같았습니다.
늘 배가 고픈 자취생으로서는 당연히 유부국수를 사 먹어야 하는데도
저는 커피를 사 먹었습니다. 커피 맛을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싫은 기색 하지 않는 그 다방에 앉아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일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 때는 시만 쓰고 있으면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시를 쓰는 일이 곧 배불리 밥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모교에 들렀다가 40여년 만에 그 다방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다방이 있던 2층엔 미장원이 들어서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 건물 앞에
한참 동안 서서 배가 고파도 고픈 줄 모르고 시를 쓰던 그 젊은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맞아, 밥 한 그릇보다 꽃 한 송이가 더 소중할 때가 있는 거야.’
그러자 제 마음에 힘이 솟았습니다. 그동안 청춘의 산맥을 넘어
장년의 강을 건너 노년의 산기슭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되기까지 제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만 꽃보다
밥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랫동안 제게 자성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로 하여금 다시 그 청춘의 시절처럼
밥보다 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행여 지금 제가 아름답다면 그래도 청춘시절에 꽃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여 지금 내가 아름다움을 잃었다면
꽃보다 밥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 삶에 꽃이 없으면 제 삶은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제 삶에 꽃이 피지 않으면 봄도 오지 않고 가을도 오지 않습니다.
제 삶에 꽃이 더 소중해야 비로소 저는 한 사람의 인간다운 인간이 됩니다.
물론 꽃이 중요한 만큼 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밥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항상 꽃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항상 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갈수록 우리의 삶이 아름다움을 잃고
피폐해진다면 바로 그런 문제 때문입니다.
밥이 없으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지만, 꽃이 없으면 인간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워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저는 밥의 절대적 필요성에만 매달려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시 쓰기가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20대 때처럼 열심히 시를
쓰며 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인 저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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