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향 같은 수필의 향기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는 수필가 유병근
최원현(수필문학가)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표현이다. 그러나 수필은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문학이 잉태의 아픔을 겪으며 탄생하는 것임에도 유독 수필에 '태어남'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필은 작가의 삶이기 때문이리라. 곧 작가의 인격이요, 인생관이요, 그의 자취인 것이다. 그렇기에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더 깊고 진한 맛으로 배어나기 마련이다.
장백일 교수는 '우리는 수필로써 삶의 환희를 캐내야 한다. 그 환희는 진통과 고뇌로부터 온다. 진통과 고뇌를 통해서 배우고, 진통과 고뇌를 통해서 환희에 도달할 때 우리는 인생의 슬기로운 수필인이 된다'고 했다. 곧 '수필은 삶의 지혜와 환희로 가는 데 있어 하나의 생명적 계기를 열어주며, 그래서 수필은 사람이 참말로 사람답게 사는 길이요, 수필가는 그 길을 새롭게 열어 가는 개척자이다' 라는 것이다.
헌데 그런 '수필'과 '수필가'가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수로만 봐도 시인 다음으로 수필가가 많은데도 여전히 수필은 제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에는 수필분과가 없다. 펜클럽 회원에도 수필가는 많지 않다. 종합문예지에서는 어쩐지 수필은 서자(庶子) 같은 취급을 받고있고, 신춘문예 공모에는 수필만 없다.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수필가는 참으로 많이 탄생한다. 수필 전문지며, 각종 지면을 통해 한 해에 등단이란 이름으로 생산되는 수필가만도 놀랄만한 숫자이고, 그냥 책을 내면 수필집이란 이름을 달고 나와서 대한민국은 마치 수필가의 나라 같이 보여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수필의 위기를 공감하고 있는가.
우리가 너무 수필을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시 한 편, 소설 한 편을 낳기 위해서는 엄청난 산고를 겪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수필은 그냥 잠시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몇일전 신문 칼럼에선 '문학은 죽어가는데 문학이 갖는 고급 문화적 이미지만 남아 이 비문학의 시대에 문학이 하나의 고급상품으로 재탄생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김명인)고 말하고 있었다. 깊이 새겨야 할 말인 것 같다.
분명 수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 열 달 동안의 사랑과 애씀과 희생이 없이는 얻어질 수 없는 한 생명의 탄생보다도 더 많고 오랜 시간의 인내와 끌어안음이 있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결실이다.
훌륭한 수필을 쓴다는 것은 곧 훌륭한 삶을 산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좋은 수필이 쉬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수필로 쓴 수필이 아니라 그냥 씌어진 글에 수필이란 이름을 갖다 붙이는 글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아침 빛 같은 새 밝음의 소망을 열게 하시는 분이 있다. 수필을 위하여 끊임없이 애정을 쏟으시는 분, 30여년간 아주 조용히 수필을 써오신 수필가 유병근 선생이시다.
선생은 '수필 쓰기란 정신적인 병의 일종이다. 수필을 씀으로써 치유되는 정신적인 병은 수필 쓰기가 구원이다. 깊은 사색으로 길어 올린 대상의 됨됨이를 문자로 읽을 수 있게 형상화시킨 것이 곧 수필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수필을 씀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는 병을 앓고 있는 수필병 환자, 선생은 '수필은 가장 높은 사유의 세계로 더텨 오르고자 하는 끈질긴 철학적 탐구의 길'이며, 따라서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정신은 글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인간을 보다 더 높은 위상으로 끌어올린다.'(수필의 무한 영역성-김병규의 수필세계-에서)고 하신다. 그런 유병근 선생을 찾아뵈었다.
"나는 1932년 8월 5일 경남의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해군에서 제대를 한 후 미 육군 전략통신사령부의 전자기사로만 한 30년 근무를 했습니다만 1954년 해군 복무시절 윤동주 시인의 동생인 윤일준 시인을 만나게 되면서 시를 쓰게 되었고, 곧 이어 수필도 쓰게 되었습니다.
자녀는 1녀 3남인데 딸은 현재 LA에 살고, 장남은 '스리컴'이란 회사에, 차남은 건축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막내는 벤처 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하는 일은 '동서대학교'와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원 등에서 시와 수필의 창작실기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낸 수필집으로는 1980년 3인집 <<협주곡>>을 출발로 <<허명놀이>>('81), <<목재수필>>('90), <<연등기행>>('92), <<춤과 피리>>('97)와 금년에 낸 <덫을 찾아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집으로 1978년에 낸 <<연암집>>을 위시하여 8권을 내었습니다. 참, 1975년 범조사에서 낸 <<한국수필문학대전집>>에 <돌>, <강물> 등 8편의 수필이 수록되었고, 1984년 금성출판사판 <<현대한국수상록>>에 <허명놀이>, <초서> 등 4편이 수록되었습니다.
상은 이것저것 몇 개 받았습니다. 현대수필문학상('90), 우봉문학상('92), 부산시인협회상('95)과 영호남수필문학상, 그리고 신곡문학상 등이 그것입니다.
향후 계획은 달리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남은 생애를 사느냐 하는 과제로 이따금 먼 하늘에 눈을 돌릴 뿐입니다."
유병근 선생은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민주화에 이르는 파란 많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신 만큼 삶에 대한 평가도 남다르신 것 같다. 그러나 살아오시며 특별히 기억되시는 행복했던 순간이나 추억되시는 일이 있으시냐고 했더니
"행복하던 일은 내게 그다지 없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전자통신기사의 일에 매달려 전자관계 서적을 읽느라 뜻하고 있던 문학에 거의 손을 댈 수 없었던 일을 속으로 아파했습니다."라고 하신다.
사실 선생께서 살아오신 시대라면 대부분 그런 아픔을 겪어야 했을 테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그토록 좋아하던 문학에도 거의 손을 댈 수 없었다는 말씀 속에선 우리 민족의 아픔이 물감처럼 묻어 나왔다.
선생께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만난 것은 언제였을까. 특히 시로 등단을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수필을 쓰시게 되었을까?
"내가 맨 처음 읽은 시집은 김춘수 선생의 <구름과 장미>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후 해군복무 당시인 1954년 윤일준 시인(윤동주 시인의 동생)을 만난 것이 시작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사상계로 등단한 윤일주 시인은 해군대위로, 저는 사병으로 있을 때입니다. 시동인지 <신작품>을 하던 고석규 씨를 알게 된 것도 윤 시인의 소개였습니다. 불행히도 위 두 분은 이미 작고했습니다. 당시 저는 고석규씨, 조영서 시인 등과 함께 <신작품> 동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 <불빛>이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고, 수필을 하게된 것은 1972년인데 당시 김승우씨가 발행하던 월간 <수필문학>에 수필 <죽송>(竹頌)이 추천 완료되어 비로소 수필에도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매원 박연구 선생이 <수필문학>의 주간을 보던 때입니다."
선생께서는 수필과 시를 함께 하시고 있다. 이 두 장르가 작품활동에서는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선생의 문학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나의 문학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이 이러저러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밖으로 나타난 내 모습이겠지요. 나는 사물의 내면을 추구하고 거기서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려는 것이 시에서나 수필에서의 기본정신입니다.
또한 수필과 시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수필은 산문, 시는 운문 구조라는 것 외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수필은 산문이기 때문에 철저히 산문정신이 깃들어야 하는데 그 산문정신이란 것에도 시적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든 예술의 바닥에는 상상력이며 시적 분위기란 것이 깔려있고 또 그래야만 미학의 향기가 감도는 수필이 된다고 봅니다. 흔히 수필에서 제기되는 허구 문제 또한 상상력의 범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인가 보다. 선생의 수필을 읽으면 리드미컬하게 읽혀지면서 수필 속 이야기가 가슴으로 저며들며 나도 모르게 작품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일테면 다분히 시적 분위기에 젖어버린다는 말이다. 선생의 수필 <양란기>(養蘭記)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고 하는데 정작 내가 그렇다. 처음에는 한 두 가지 난으로 만족했는데 날이 갈수록 마루에 난분이 늘어난다. 많은 난잎이 서로 엇갈려 대지르는 모양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은 마음에도 맑은 바람이 사근댄다. 나는 그 사근대는 소리가 좋아 때로는 혼자 주전자에 찻물을 끓인다.'
선생은 수필정신을 중시하는 것 같다. 선생은 '수필은 여기(餘記)의 문학이 아닙니다. 평생 지고 가야 할 커다란 업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 수필정신입니다'라고 수필정신을 강조하신다.
그렇다면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수필이란 어떤 것일까.
"수필을 하는 수필가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각자 나름대로의 수필관이 있을 것입니다. 즉 수필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마음으로 뜻매김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을 때 수필은 그야말로 허섭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글이 됩니다. 흔히 순수수필, 대중수필 등으로 문학이냐 아니냐의 잣대를 잡으려고 하는데 대중수필이라고 문학의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필은 수필적 대상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창조하는 일입니다. 달리 말씀 드린다면 대상을 낯설게 하기란 것입니다. 시뿐만 아니라 수필도 이런 투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수필을 품격의 문학이니, 관조의 문학이니 하고 굴레를 씌웁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수필 이전의 상식입니다. 보다 더 철저히 대상과 대결해야 합니다. 대상의 근원을 꿰뚫는 투시 안으로 먼 것과 가까운 것을 고루 보아야 합니다. 하기에 수필 또한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그런데 품격을 고집할 때 수필은 자칫 공자왈 맹자왈의 범주에 머물고 맙니다. 그런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수필은 에헴 하는 양반걸음걸이의 문학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지 않은가.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도 선생의 생각은 확고하시다.
"디지털 시대 속의 21세기에도 우리 수필은 먼저 수필이 문자를 바탕에 까는, 기록을 바탕에 까는 문학임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시는 노래로, 소설은 이야기로 전할 수 있지만 무드의 문학이라고 하는 수필은 문자로 기록되어 그걸 음미할 때에야 참다운 수필의 맛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1세기는 과학의 잣대에 자칫 문학이 끌려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보입니다. 컴퓨터 조작에 따른 사이버 세계란 것이 문학을 가벼운 쪽으로 몰아세울 기미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거기 편승하여 수필을 재미로 읽고 즐기는 표피적인 문학쯤으로 여긴다면 이 또한 경계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수필문학이 보다 더 확고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도록 좋은 수필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 수필문학의 비중은 시가 가령 문학 속에서 어떤 비중을 갖느냐고 하는 물음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수필을 만약 신변잡기 쪽으로만 밀어 부친다면 여타의 문학도 간혹 신변잡기나 다름없는 것과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두고 신변잡기라고 하느냐에 따라 말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구도를 잡고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문학과 비 문학으로 판가름이 난다고 보겠습니다. 함으로 수필도 단순한 구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구나 뻔히 아는 이야기를 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대상을 복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대상과 비슷하게 늘어놓는 대상의 표절이란 것입니다."
"고로 수필문학이 발전하려면 문제점부터 볼 수 있어야 하겠는데 수필문학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는 수필을 가볍게 본다는 안일한 수필관입니다. 수필을 일반 산문으로 여기려는 일부 세력도 문제입니다. 수필가라는 명함을 찍기 위한 수필 행위를 한다면 이 또한 넌센스입니다.
따분하지만 수필은 인기의 문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쩌다 인기 수준에 오르는 산문집이 나오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런 류의 글은 수필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상업성에 잣대를 댄다면 그건 대중문학으로서의 놀이판 문학이 되기 쉽습니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문학정신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
선생의 말씀을 듣노라니 내가 얼마나 안이한 사고로 수필을 대하고, 수필을 쓰고, 수필에 대해 평가했는가를 반성케 된다. 어쩌면 가볍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수필을 가볍게 보고 있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선생께서는 문학과 관련하여 잊을 수 없는 분으로 김병규 선생을 드셨다.
"나의 수필문학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지난 4월에 작고하신 법 철학자이며 수필가인 김병규 박사입니다. 그분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분의 정신세계, 문학세계를 특별히 좋아했습니다. <에세이문학> 2000년 여름호에 그 분의 특집이 나와 있는데 거기에 제 나름대로의 김병규 수필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훌륭한 수필가를 꼽으라면 저는 서슴없이 그 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학맥과 인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 분만큼 홀로 참된 수필을 쓰신 분은 아마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지난 호의 본 난에 김병규 교수를 모시려 했었다. 조금만 빨리 서둘렀어도 그 분의 삶과 문학과 그리고 수필에 대한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다. 더구나 이렇게 유병근 선생을 통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분으로 회상케 되니 안타까움이 더욱 커진다. 그래도 이렇게 떠나가신 후에까지도 그리워하고 사랑 받는 분이시니 얼마나 행복한 분이신가. 우리 모든 수필인 뿐 아니라 모든 문인들에게 참으로 좋은 말씀을 남겨놓으실 수 있었는데 지역적인 어려움 때문에 미루다 이렇게 되고 보니 죄송스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다. 지면을 통해서 삼가 가신 분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유병근 선생의 대표작을 여쭤봤다.
"대표작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수필집 <<허명놀이>>에 게재되어 있는 <돌> <소요기>와 <<목재수필>>에 게재되어 있는 <뒷산>, 그리고 수필집 <<덫을 찾아서>>에 게재된 <봄비 감상법>, <수필의 덫> 등에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수필 사랑은 결코 입으로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선생께선 우리 수필인들과 모든 문학인들이 참으로 문학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애정 가득한 말씀을 해 주셨다.
"수필을 하고자 하는 수필가 혹은 수필가 지망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수필이 각자의 살과 뼈, 피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수필만으로 육십 평생을 살아온 현존하는 좋은 수필가도 있습니다. 그런 분의 수필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수필은 한 때의 허명이나 놀이가 아니라는 단단한 각오로 수필의 길에 들어서야 비로소 떳떳한 수필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필이 삶의 모두는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수필정신을 들출 때 수필이 삶의 배수진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수필은 문학이 아니라는 가벼운 입방아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문예지에서 수필은 푸대접을 받습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무어니 해도 수필가에게 있습니다. 유독 수필만이 신춘문예에서 제외된 일도 수필을 너무나 가볍게 다루어 온 수필가에게 있습니다. 이런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학예술이 고루 발전하려면 수필 또한 여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신춘문예는 물론 문예 전문지에서 취급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수필!
선생께서 수필 쓰기란 일종의 병이요, 그 병은 수필을 씀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는 병이라고 하신 것처럼 선생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참으로 수필이 가장 높은 사유의 세계로 더터 오르도록 끈질긴 탐구를 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시와 수필을 함께 하면서 둘 다 애착을 갖되 수필은 시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신다는 수필가, 수필문학은 끊임없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썩은 우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 나라 녹차를 특히 즐기시는 분, 수필은 결코 악세사리가 아니라며 수필적 대상을 늘 새롭게 탄생시키는 창조자의 정신이 수필정신이라는 유병근 선생은 참으로 이 시대에 온 몸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문인이요 수필가였다.
어느덧 아스팔트를 녹이는 더운 열기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제 해운대 앞 바다를 위시하여 전국의 바다와 산엔 여름을 즐기려는 인파가 줄을 이을 것이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삶은 수필이라고 했는데 언제쯤이나 우린 좋은 수필 한 편을 읽었을 때의 느낌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후세에 길이 남을 그런 좋은 수필을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꾸룩꾸룩꾸룩, 도시음 속에서도 갈매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우리 삶의 여유 공간은 어디에다 만들어야 할까. 유병근 선생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화두 하나씩을 안겨주고 있었다.
수필이 삶의 배수진일 수 있는 마음, 그런 각오가 있을 때 좋은 수필도 탄생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우리 문학에서 수필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도 타 장르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여름은 펄펄 끓듯 여름다워야 참 여름 맛이 나는 것 아닐까.
수필을 쓰는 한 사람으로 어떻게 수필인다울 수 있을까, 커다란 숙제 짐을 내 삶의 지게에 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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