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리들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또 어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어야 하고 다른 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어떤 베일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들어야 좋은 소리도 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우리의
곁을 떠난 친구와도 같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소리도 있다. 폭죽과 폭포와 천둥소리는
여름에 들어야 제격이다. 폭염의 기승을 꺽을 수 있는 소리란 그리 많지 않다.
지축을 흔드는 이 태고의 음향과 '확'하고 끼얹는 화약 냄새만이 무기력해진 우리들의
심신에 자극을 더한다. 뻐꾸기며 꾀꼬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폭염 아래서는 새들도
침묵한다. 매미만이 질세라 태양의 횡포에 맞서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힘찬 기세에
폭염도 잠시 저만치 비껴 선다. 낮에는 마루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야윈 잠결, 문득
지나가는 한줄기 소나기, 파초 잎에 듣는 빗소리가 상쾌하다. 밤에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물가를 거닌다. 달이 비친 수면은 고요한데 이따금 물고기가 수면 위로 솟았다 떨어지면서
내는 투명한 소리, 그 투명한 음향이 밤의 정적을 지나 우리의 가슴에 가벼운 파문을
던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언제나 이처럼 절실한 것을.
흔들리는 이지랑이 속으로 아득히 비상하던 종달새의 가슴 떨리는 소리는 언제나 꿈,
사랑, 희망과 같은 어휘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상아빛 건반 위로 달려가는 피아노
소리는 오월의 사과꽃 향기 속으로 번지고,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는 나른한 졸음에
금속성의 상쾌함을 더한다. 이런 소리들은 초여름의 부드러운 대기 속에서 들을 때 더
아름답다. 대체로 청각은 시각보다 감성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 호소하는 힘이 세다.
때로는 영적이며 계시적인 힘을 지니기도 한다. 향기가 그러하듯 소리는 신비의 세계로
오르는 계단이요,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그만큼 소리와 향기는 종교적이다.
신자가 아니면서도 성가가 듣고 싶어서 명동성당에 들어가 한참씩 차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독경소리가 좋아서 출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성가는 나의 마음을 승화시키고 독경소리는 나의 마음을 비운다. 가을 하늘처럼 비운다.
나는 특히 사람의 소리를 좋아한다. 파바로티의 패기에 찬 목소리를 좋아하고 휘트니 휴스턴의
소나기 같은 목소리도 좋아한다. 그녀는 그레미상 시상식에서 한꺼번에 여섯 개의 트로피를
안고 화면 가득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나나 무스쿠리의 목소리와 케니 지의
소프라노 색소폰 소리를 좋아한다. 애수어린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내 나이를 잊고,
내 차가 낡았다는 사실을 잊고, 젊은이처럼 빗속을 질주할 때가 있다.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대금소리와 거문고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림자가 비친 창호지 저쪽에서 들려오거나, 아니면 저만치 떨어진 정자에서 달빛을 타고 들려올
때가 제격이다. 적당한 거리는 베일과 같은 신비스러운 효과를 낸다. 그런 간접성, 그것이 아니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국악인지도 모른다.음악 뿌이겠는가. 그림도 그렇고 화법도
그렇다. 산수화를 그릴 때는 안개로 산의 윤곽 일부를 흐리게 함으로써 비경의 효과를 얻는다.
같은 지령적인 언어라도 완곡 어법을 우리는 더 좋아한다. 새 소리를 들을 때도 그렇다. 온전히
깨어 있을 때보다 반쯤 수면상태에서 들을 때가 행복하다. 풀잎에는 아직 이슬이 맺혀있고, 아침
햇살은 막 퍼지려고 하는데,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그 청아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난 밤의 악몽에 시달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새 소리로 열리는 새 아침은
언제나 새 희망 속에 우리를 눈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