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선정(禪定) / 구상

윤소천 2013. 12. 21. 08:57

 

 

 

 

 

  늙은 바위 번들번들한 뒷머리에

 

  푸른 벌레가 알을 슬 듯

 

  파릇파릇 이끼가 돋아 있다.

 

  

 

  백곡(百縠)이 움트는 봄비의 소치(所致)런가?

 

  아니면 백세 바위의

 

  소생(蘇生)하는 유치(幼稚)런가 ?

 

 

 

  이제 꽃도 열매도 잎사귀도

 

  소용치 않고

 

  비바람도 천둥 번개도

 

  들리지 않고

 

  밤도 낮도 분간이 없고

 

  악취나 향내도 모르고

 

  과거와 현실과 꿈이

 

  다를 바 없는 경계(境界)

 

 

 

  바위 안은 암거(暗渠)의

 

  흐름이 아니라

 

  아침 햇발을 받은

 

  영창(映窓)의 청명(凊明)

 

 

 

  하늘의 저 허허창창(虛虛蒼蒼)과도

 

  면오(面晤)하고

 

  이 지상 , 버라이어티의 문란(紊亂)도

 

  관용(寬容)하고

 

  저 대양(大洋)의 넘실거림도

 

  홀로의 묵좌(黙坐)로서

 

  진정(鎭靜)한다.

 

 

 

  그러나 나는

     알라딘의 램프가 아니다.

 

     무심(無心)한  바위에

     세심(細心)히 낀 이끼

     선정(禪定)의 광경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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