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11

9 월 / 헤르만 헤세

우수(憂愁) 어린 정원피어 있는 꽃에 싸느다란 비가 내린다.그러자 여름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말없이 자신의 임종을 맞이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펄럭펄럭높다란 아카시아 나무로부터 떨어진다.그러자 여름은 깜짝 놀라 힘없는 미소를꿈이 사라지는 마당에다 보낸다. 이미 그 전부터 장미꽃 옆에서다소곳이 휴식을 기다리고 있던 여름은이윽고 천천히 그 커다란피곤에 지친 눈을 감는다.

읽고 싶은 시 2024.09.22

사람의 됨됨이 / 박경리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부자라고 모두가후한 것도 아니다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인색함으로 하여 삶이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생명들은 어쨌거나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길가에 굴러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보잘 것 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왔다심성이 후하고 넉넉하고 생기에찬 인생도 더러 보아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후한 사람은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출처. 사람의 됨됨이 / 박경리.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09.22

가을비 / 도종환

​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자리에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잎들이 지고 있습니다​어제 우리 사랑하고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내일이 자리를 뜨고 나면바람만이 불겠지요​바람이 부는 동안또 많은 사람들이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출처. 가을비/ 도종환.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09.21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 이외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고즈넉한 찻집에 앉아화려하지 않은 코스모스 처럼풋풋한 가을 향기가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차 한 잔을 마주하며말없이 눈빛만 바라보아도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가을날 맑은 하늘빛 처럼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향기가 녹아 들어그윽한 향기를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가을엔 억새처럼 출렁이는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출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 이외수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09.20

인생 수업료 / 윤소천

사십대 초반, 나는 사업을 하다 나라의 금융위기와 맞물려 실패를 보았다. 실업자가 되어 마음 둘 곳이 없어 기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대학시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심한 고초를 겪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택시 운전사가 된 후배를 만났다. 동변상련同病相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사정이 있는 날이면 내가 대신 땜빵 운전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아는 이를 만날까 두려워 모자를 깊이 눌러썼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하루 이십 여명의 승객이 타고 내리는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 사는 저마다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일에 흥미가 생기면서 신기하게도 불면으로 깊어진 우울증이 말끔히 나았다. 이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는데, 길의 노숙인과 길가 노점에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의 모..

소천의 수필 2024.09.18

달빛 기도 /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 내 마음에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출처] 달빛 기도/이해인,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09.16

차를 마시며 / 윤소천

1990년 초였다. 사업차 서울에 갔다가 친구와 홍익대 앞 전통 찻집에 들렀는데, 찻집 분위기가 고풍스럽고 편안했다. 처음으로 다기에 우려내어 차를 마셨는데 깊고 은은한 향이 입안에 오래 남아 있어 참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의 귀한 일급 청차淸茶였다. 나는 급한 성정에 친구가 추천해준 다기와 차 두 봉지를 사 들고 내려왔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나서야 차 맛을 알게 된 듯하다. 차 문화가 시작된 중국에서는 예부터 차는 정행검덕精行儉德한 사람에게 좋다 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평정심平靜心이 있어 검소하며 소박한 삶을 산다는 말이다. 이들을 매사에 처신이 반듯하고 여유가 있어 겸손하고 덕망있는 현자賢者라 했다.   옛글에서 차의 첫 잔은 우매愚昧한 마음을 씻어 상쾌한 마음을 갖게 하고, 둘째 잔..

소천의 수필 2024.09.16

자 유 / 조병화

공중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공중을 날며 스스로의 모이를 찾을 수 있는눈을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그렇게 공중을 높이 날면서도지상에 보일까 말까 숨어 있는 모이까지찾아먹을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아, 그렇게스스로의 모이를 찾아다니면서먹어서 되는 모이와먹어서는 안 되는 모이를 알아차리는민감한 지혜를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지상을 날아다니면서내릴 자리와 내려서는 안 될 자리머물 곳과 머물러서는 안 될 곳있을 때와 있어서는 안 될 때를가려서떠나야 할 때 떠나는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가볍게 먹는 새만이높이 멀리 자유를 날으리.

읽고 싶은 시 2024.09.15

가 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말로 글로 다 할 수 없는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사랑의 정감들을당신은 아시는지요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길이 살아나고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불빛을 찾았습니다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작은 흙길에서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당신께 드립니다. [출처]  가 을 / 김용택. 작성자 소천의 샘텨

읽고 싶은 시 2024.09.08